[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처연하면서도 굽이치는 사연
<읽고 싶은 책 즐겁게 읽기>에서 그 많은 책들 중에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를 고른 이유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 문화유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긴 사연들로 문화유산이 더욱더 빛나고 소중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7권중에서도 2권을 먼저 선택한 것은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라는 부제가 처연하면서도 굽이치는 사연을
듬뿍 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지요.
이 책은 문화유산에 얽힌 사연들을 지은이의 구수한 입담과 소박한 생각에서 비롯된 느낌들로 나열되어
읽는 내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였고, 눈물짓게도 하며 가슴이 미어지게도 하였습니다.
농월정의 행락객들이 왜 그리 시끄럽게 흔들고 춤추며 소리 지르고 노래하는 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이해하려는 저자의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여행지에서 지금까지 손사래 치며 피해 다녔던 풍경들을 조금은 참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자와 고택은 자연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고 소박하면서도 기품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곳에 서면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 하여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옛 선인들은 그 곳에서 은은한 달빛과 바람, 구름, 꽃, 나무에 대해 그리도 많이 노래했나 봅니다.
산천재 윗벽에 그려진 경작도의 소 모양을 그대로 살려낸 미장장이의 손길은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뱀만 아니라면, 단속사 대밭에 누워 모든 근심거리 놓아버리고 높은 수죽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과 눈이 벌써 환해지는 듯 합니다.
지은이는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풀어놓고 마무리에서 고품격 유머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연암의 손자 박규수의 경륜과 인품에 대한 설명이 있은 뒤,
저자의 친구인 안병욱 교수와 있었던 일화에 관한 이야기는 웃음이 나는 동시에 어떤 말이 맞을지
고민하게 했지요.
안목을 높다고 해야 하는 건지, 깊다고 해야 하는 건지, 넓다고 해야 하는 건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고즈넉한 영풍 부석사
영풍 부석사를 읽으며 2년 전에 다녀온 부석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완만하게 오르는 고즈넉한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면 지루해 지려고 할 즈음,
보이는 일주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높게 보이는 당간지주를 지나 천왕문에 다다르면 그 곳에서 계단을 오르게 됩니다.
안양루로 오르는 누각 밑에서 살포시 내미는 적삼 두른 여인의 고운 자태가 보이는 듯하여
그 호젓한 안양루는 단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계단들이 9품의 질서를 갖춘 것임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무량수전에서 내려다 본 경치는 안개를 이불 삼아 엎드려 있는 듯한 태백산맥의 줄기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아 지금도 그 안온함이 선연합니다.
이렇게만 알고 지나쳤을 부석사를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지요.
의상대사를 사모 한 선묘아씨는 의상의 무사귀환을 빌며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죽어서도 늘 의상을 따라다니던 선묘는 의상의 뜻을 헤아려 사방 1리나 되는 큰 바위가 되어
사교 무리들을 흩어지게 했다고 합니다.
불전 뒤에 있는 가로지른 큰 바위위에 또 다른 바위가 있는데 서로 뜬 돌이라는 사실입니다.
옛 우물자리에 선묘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정되었다고 하니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남한 땅의 5대 명찰을 논한 <논제 명찰>을 읽으며
아직 가 보지 못한 개심사, 무위사, 내소사, 운문사도 마음과 머리로 꽤 운치 있게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정경 <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 필 무렵> 책의 내용 중에 아름다운 정경을 뽑아 책에 실어 주니,
눈감고 가만히 그 모습들을 상상하게 되어 이효석 작가의 예술적 감수성에 감탄하며
그 분의 생가가 더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실린 글을 짤막하게 적어봅니다.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페이지 110쪽)
은은한 달빛에 잎새들은 촉촉함을 더해 짙푸름을 더하고 온통 하얗게 덮인 메밀꽃이
알알이 빛을 내며 눈앞에 쫘악 펼쳐지는 것 같아 저는 이 글로 숨이 막히는 듯 했습니다.
글 중간 중간 저자와 지인들이 말했던 내용들은 꾸밈없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봉평 터널을 지나며 저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한 내용과 정선. 평창을 지나며 산을 보고 말한
황재형님의 첫인사말이 그러했지요.
드라마틱한 삶, 먹먹한 사연들
아우라지 뱃사공에 대한 사연은 저자가 넉넉한 배품과 함께 작은 정성으로 촌지를
흰 봉투에 넣어 갔는데 뱃사공 강 아저씨를 만날 수 없었다는 글에
‘강 아저씨가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일었습니다.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속상하면 강가에 나아가 돌을 만지며 마음을 다스렸다는 옥산장 아주머니의 드라마틱한 삶에서는
담담한 마음에 그 돌을 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한숨지으며 얼마나 마음을 다지고 다지며 어지러운 생각들을 붙들어 맸을까요?
강가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그 분의 외소한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의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북 아이들의 글짓기를 보며 그 곳 사람들의 절박하고 허망한 삶이 메아리쳐 울리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황재형님이 그린 <앰뷸런스> 작품은 흔들리는 불빛을 쏘아가며 어둠을 뚫고 급하게 내달리는 앰뷸런스에서
급박하고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그 가족들은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끔찍했습니다.
그 분들은 이토록 힘겨운 삶을 무엇으로 견뎌낸 것일까요?
이렇듯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며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이기도 했습니다.
단지,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이 아닌 아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뭉클했습니다. 그 분들의 삶이 곧 역사이고, 살아온 터전이 문화유산 일 것입니다.
석굴의 아름다움과 아픔
석굴암으로 알고 있었던 석굴사에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 한 번, 성인이 되어 한 번, 지금까지 두 번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석가가 다른 불상과는 달리 젊고 잘 생겼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통통한 불상의 몸은 어린나이의 눈에도 여유롭고 인자해 보였습니다.
천장덮개돌이 세 동강 난 것을 전한 김대성의 설화를 저자가 미루어 짐작해 해석한 사연이 흥미로웠습니다.
공사가 수 십 년의 세월을 거쳐 진행된 어느 겨울날, 힘들고 지루했던 석공들은
김대성이 잠든 틈을 타 20개의 쐐기돌을 박아 천장덮개돌을 얹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추측인 것 같습니다.
10대 제자상은 완만하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선이 자연스럽게 참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습니다.
요네다가 측량한 석굴을 보며 신라인들의 정교한 과학과 기술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석굴의 방향이 동짓날 해 뜨는 방향과 일치 한다는 것과 샘물이 솟는 암반위에 석굴을 세운 깊은 뜻은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신라인들의 지혜일 것입니다.
대개의 불상인 경우 광배가 원상에 직접 부착 되어 있는데 석굴에 있는 불상은
원상과 떨어져 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이한 부분입니다.
당연히 중학생 시절에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광배가 분리되어 있어 다각도에서 비추어 볼 수 있는 원근감이 느껴졌습니다.
창의적인 발상이 눈이 부셨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이토록 경이롭고 소중한 유물을 도굴하고, 파괴하고 멋대로 보수해서 망쳐놓은 일본인들에게 분노가 일었습니다.
해체되는 석굴 사진을 보면서 답답하여 탄식이 흘러나왔지요.
오랜 세월을 거쳐 수난을 당한 석굴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아깝고 억울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파손되고 사라진 우리 문화유산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석굴의 신비로움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보존을 위해 애쓰시는 남천우 박사님, 정년퇴직한 노령임에도 석굴 작업의 사후 관리를 위해
석굴을 오르신 김효경 박사님, 민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비로 신라역사 과학관을 개관해 역사의 교육장을 만드신
석우일 사장님 같은 분들이 계셔 우리의 문화유산은 앞으로 더욱더 계승 발전 될 것입니다.
<석굴암 대불> 인고의 고통
저자가 소개한 청마 유치환님의 <석굴암 대불> 이란 시에서
석굴이 고스란히 짊어지었을 인고의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석굴암 대불 (石窟庵 大佛)
목놓아 터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눈감고 앉았노라니
천 년을 차가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
목숨이란!
억만 년을 원(願) 두어도
다시도 못 갖는 것이기에
이대로는 못 버릴 것이기에
먼 솔바람
부풀으는 동해 연(蓮)잎
소요로운 까막까치의 우짖음과
뜻없이 지새는 흰 달도 이마에 느끼노니
뉘가 알랴
하마도 터지는 통곡을 못내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적적(寂寂)히 눈감고 가부좌하였노니.
20년이 지난 지금
첫 번째 답사기에 대한 오류에 대해 사과하고 정정하는 저자의 책임 있는 의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부록으로 실제로 현장 답사했던 일정표와 안내지도 까지 제시해주셧습니다.
책만 가지고 답사하는 입장에서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심한 배려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읽은 책은 개정판이 아닌 1994년도에 발행한 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문에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질지 모를 당시 저자의 깊은 고민과 걱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또한, 진정성과 한없는 애정이 묻어났습니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은 <문화유적답사기>가 7권 까지 출판 되었고 일본편도 나와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에야 읽게 된 독자로서 부끄럽기도 하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한참 뒤에야 관심을 갖게 된 것에 고개 숙여 깊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정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곳곳에 많은 유산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랑스러웠고 기뻤습니다. 계획을 세워 모두 답사하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지요.
책을 보며 다가왔던 감동들을 직접 현장에서 느낄 수 있다면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몰라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꼼꼼하게 살피며 의미를 되새기면서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알고 모르고는 엄청난 차이를 나게 하지요.
요즘 연휴가 이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이룹니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인천공항을 보면 모두들 해외여행만 다니는 것 같습니다.
경기 안 좋다는 말도 말짱 거짓말처럼 들립니다.
<문화유산답사기> 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해외여행보다는 우리 문화 유적지가 북적북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역사의식을 한층 더 높이고 그것을 비롯해 계승 발전시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하겠지요.
<문화유산답사기> 책은 깊은 사유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을 갖게 했고,
직접 들리고 보이는 듯 한 사연들은 가슴 깊은 곳 까지 와 닿아 그 분들의 아픔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읽는 내내 따뜻한 온정이 느껴져 책을 꼭 안고 다녔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점심시간에, 잠들기 전에도 손을 놓지 못한 책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