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의 하이쿠 기행 - 오쿠로 가는 작은길
여행을 떠나는 설렘보다는 정든 곳과의 헤어짐으로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이
떠나는 이의 반쯤 돌린 등 뒤로 젖어드는 느낌입니다.
지은이의 소박하고 차분한 여정으로 읽는 눈길도 글위에 머물다 여운을 감상하며 쉬엄쉬엄 따라 갑니다.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의 아름다운 기억을 담아 놓는 나그네의 마음인 듯 합니다.
함축된 의미를 찾아내어 그 순간의 정취를 가깝게 느끼려하니 참 어렵습니다.
하이쿠에 두가지 규칙이 있군요.
5.7.5 운율에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고 ~여, ~로다, ~구나 와 같은 기레지를
사용하여 여운과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규칙을 염두하며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하이쿠를 미숙하지만 저만의 느낌으로 풀어서 감상 해 봅니다.
부끄러움을 잠시 접어두고 씁니다.
뭉게 구름이
수도없이 무너져
쌓아올린 달 산.
<비가 온 다음 날 아침 맑게 게인 푸른 하늘에 솜을 뜯어 놓은 것 같은 구름이 피어올라 산과 같이 솟아 올랐다.>
뜨거운 해를
바다에 넣었도다
모가미가와 강.
<붉게 타오르던 해는 바다를 포근히 감싸안고는 제 몸을 죽여 바다속으로 숨어들었다.>
기사카타여
비에 젖은 자귀꽃
서시를 보네.
<비에 젖어 고개숙인 자귀꽃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빗방울은 마치 슬픔에 잠겨 눈물이 맺혀있는
아름다운 미녀 서시를 보는 듯 하다.>
시오고시의
얕은 여울 학의 다리
바다는 시원타.
<바다의 잔잔한 물결이 고운 모래를 쓸고 긴다리를 뽐내고 수면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
학의 자태는 바다의 푸르름을 더 하니 시원하다.>
첩첩 바위산의
바위보다도 하얗도다
가을의 바람
<깊은 산중에 세월의 비바람에 쓸려 창백하리 만큼 바랜 바위에 쓸쓸한 가을 바람 마저 불어오니
가슴이 뻥 뚫려 비어있는 듯 하다.>
파도 사이사이
분홍빛 조그만 조가비에
섞이는 싸리꽃
<부서지는 파도 사이로 보이는 조가비 위에 살포시 포개진 자줏빛 싸리꽃 잎이 하얀
물거품 위로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