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초, 요시다겐코,
<도연초>라는 책 제목은 '마음속에 오가는 부질없는 생각들'이라는 뜻입니다. 좋은 글들 중에 눈길이 한번 더 가고 마음이 한번 더 가는 글을 옮겨 봅니다.
- 물가 풀잎에 단풍잎이 떨어져 그 위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이른 아침, 정원의 가느다란 도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은 참으로 정취가 있다.
- 실이 어떤 색으로 물들까 가슴 졸이고 길이 만났다 다시 헤어지는 것을 슬퍼하였다지 않는가.
- 오늘 아침의 아름다운 눈이 어떻습니까 하고 한마디도 쓰지 않는 그런 멋없는 분의 부탁을 어찌 들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 집 주인은 손님을 보내고 나서 미닫이 문을 조금 열고 조용히 달을 보고 있는 듯 하였다.
-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하여 자연히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
- 활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화살을 두개 가져서는 안된다.
-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일은 대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신분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의 마음으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으로,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마음으로, 유능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 가야 한다.
- 어떤 사람의 임종이 훌륭했다는 말을 들을 때 그저 평온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면 그것으로 감명 받을 것을.
- 봄에 벌써 여름 기운이 보이고 여름에 벌써 가을의 정취가 보이며 가을은 곧 추워지고...
- 그저 늙으면 "이젠 잊어버려서 모르겠어" 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 뛰어난 세공사는 약간 무딘 칼을 쓴다고 한다.
- 즐거움이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53단의 닌나지의 스님 이야기는 뒤집어 쓴 솥 때문에 피가 흐르고 자꾸만 부어올라 숨도 못 쉴 지경이라니 '어떡해~, 아프겠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교훈적인 이야기지만 즐겁게 해주려고 한 스님의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도연초>의 하이라이트는 개인적으로 137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꽃이 지고 달이 기우는 것을 아쉬워하고 미처 다하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축제가 끝나고 난 후의 큰 길 풍경에서 세상의 덧 없음을 보는 모습은 마음 한 자리에 크게 자리잡습니다.
- 모든 일은 처음과 나중이 멋있다. 남녀간의 사랑도 그저 만나 밀회를 나누는 것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못 만나서 그리 워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탄식하며 긴긴 가을밤을 혼자 지새며 멀리 있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만이 사랑의 정취를 안다고 할 수 있으리라.
154단의 불구자들에 비유하여 진귀한 것을 소홀히 하라는 글은 상대방에게 있을 법한 사연을 짐작한다면 비유가 적절치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도연초>를 읽으며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상을 꼬집어 어찌 저렇게 잘도 풀어 놓았는지 맞다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기도 하고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도 잘 비추어 보게 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묘사한 부분은 인간적이었습니다.
자연을 통해 자유의 즐거움을 얻는 것은 혼란시대를 산 요시다 겐코의 처세 방법이었나 봅니다.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요시다 겐코의 품격과 취향에 고상함이 묻어나 그저 조신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어요. 교훈적인 글을 마음속에 담고 그렇게 살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