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1905년의 일본의 독도 편입은 유효한가?
1905년 1월 28일, 일본 정부에 의해 실시된 독도의 시마네 현 편입이 법적으로 유효한가 아닌가가 문제화되어 있다. 대한민국 측은 독도의 시마네 현 편입이 법적으로 불충분한 부분이 있어, 비밀리에 이루어졌던 것이므로, 비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에 대하여 일본 측은 '국제법에 의한 적법한 수속이 이루어졌고, 또한 신문 등에도 보도되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는 지적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다. 더구나, 판례에 비추어 보면 '비밀리에 실효지배를 할 수는 없다'고 되어 있어, 특정 편입 수속이 아니라, 그 실효성이 쟁점이 고 있다.
실효성 이외에 통지 수속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팔마, 그린란드의 판례에 비추어 볼 때 통지의무없으며, 통지의무를 지지하는 국제법 학자도 극히 적은 수이다. 시마네 현의 허가에 기반한 강치 사냥이나 일본군의 망루건설을 어떻게 허가하는가가 쟁점이라고 생각되지만, 라이선스 허가를 받은 개인이나 민간 경제활동, 군사기지의 건설, 유지 활동은 실효지배로 유효하다.
대한민국 측 주장의 요약
870년, 일본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国交際始末内探書)」에「竹島松島朝鮮附属ニ相成候始末 죽도송도 조선부속 이상성후 시말」이란 기술이 있다. 1877년, 일본은 죽도와 송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일본해 내 죽도 외 한 섬을 판도외로 정한다"고 하여, 태정관 지령에서「竹島
外一島之義本邦関係無之義ト可相心得事」라고 하고 있다. 한 섬은 송도(현재의 독도)이므로, 일본은 이때 독도를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했다.
1882년, 일본이 제작한『조선국전도』에 송도가 그려져 있다. 또한, 1883년에 일본이 제작한 『대일본전도』에는, 송도는 그려져 있지 않다.
송도는 독도와 같으므로 이때 일본은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 (2003년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학교의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이 두 개의 지도의 사본을 울릉도의 독도 박물관에 기증했다.)
1900년의 대한제국령으로 석도(독도)를 울릉군으로 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관음도와 죽서도는 섬 자체가 울릉도에 아주 근접한 섬으로, 흐린 날에도 보이는 섬이다. 그러므로 '낮에 맑은 날에 보인다.'고 하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맞지 않다. 따라서 관음도와 죽서도는 석도가 아니다.
1905년 1월의 일본에 의한 독도 편입은 군국주의에 의한 한국침략의 시작으로 강제적인 편입이었다. 원래 일본 영토였다면, 편입할 필요가 없다.
청나라 속국 조선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해 청나라 속국에서 풀려나 러시아 속국이냐 일본 속국이냐를 놓고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러일전쟁에서 양국 해군 함대는 대마도 해전과 독도 해전을 치뤘다. 러일전쟁 와중에서 일본은 1905년 1월 대마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고, 러시아는 러시아 영토라고 주장했다. 1905년 9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1905년 11월 을사조약으로 대마도와 독도는 물론 조선 전체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대통령 취임 첫 연설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며,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일본 측 주장의 요약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国交際始末内探書)」의 「竹島松島朝鮮附属ニ相成候始末 죽도송도 조선부속 이상성후 시말」에 있는 송도는 조선의 문헌이나 지도에 나오는 우산도로서, 이 고지도에서 현재의 죽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의 송도는 죽서도이다.
일본의 태정관 지령에 있는 「죽도 외 한 섬」은 당시 이름이 명확하지 않았던 섬이다. 이때 즈음에, 죽도나 울릉도의 경위도를 잘못 기록한 유럽의 지도가 일본에 들어와, 실재하지 않는 위치에 그렸던 섬을 죽도, 현재의 울릉도를 송도, 현재의 죽도를 리앙쿠르 락 등으로 했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위치의 죽도와 현재의 울릉도를 죽도 외 한 섬으로 하여 판도 외로 하였다.『조선국전도』의 죽도는 존재하지 않는 'アルゴノート島'로서, 이 당시의 지도는 전부 울릉도를 송도로 그리고 있다. 경도는 쓰여 있지 않지만, 아랫쪽의 그려진 일본의 위치로 추정하면, 이 지도에 그려진 송도는 울릉도이고, 크기도 울릉도와 같은 정도로 그려져 있다. 이 지도에는 경도도 기입되지 않고, 위도도 크게 어긋나, 당시 울릉도와 송도의 위치가 혼란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대한지지 1899과 대한신지지 1907년의 기재에는,「울릉군의 행정지역은 동경 130도 35분부터 45분까지로 한다」고 되어 있다. 독도는 그 행정구역의 밖인 131도 55분에 있어, 당시의 한국은 독도를 한국영토로 하지 않았다. 또한 이 당시의 한국의 동단을 제시하는 자료는 전부 동경 130도 33분 ~ 58분에 들어 있고, 현재의 독도를 한국령으로 하고 있지 않다. 석도가 독도라고 하는 증거는 없다. 조선의 고지도를 보는 한, 석도는 현재의 관음도나 죽서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독도는 1905년에 일본이 시마네 현에 편입하기까지 다른 나라에 실효지배를 받지 않았고, 독도의 편입수속은 국제법에 비추어도 완전히 합법적이다. 또한 독도를 편입했을 때에 일본은 항의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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