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보기

군함도, 한국의 젊은이들을 강제 징용해 하루 12시간씩 탄광에서 노역을 시키다.

반응형

 

 

군함도, 한국의 젊은이들을 강제 징용해 하루 12시간씩 탄광에서 노역을 시키다.

 

하시마 섬(일본어: 端島 (はしま))은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이다. 섬의 모습이 마치 군함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군칸지마(軍艦島 (ぐんかんじま),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여 석탄 노동을 시킨 곳이기도 하며 또한 1960년대까지 탄광 도시로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폐산 이후 주민들이 이주하였으며, 섬에는 당시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본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신청을 하였으나, 한국의 반대로 지정에 난항을 겪었다. 그후 강제 노역에 대해 명시를 하겠다는 조건을 통해 간신히 등재하였으나, 직후 태도를 바꾸어 강제 노동의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

19세기석탄의 존재가 확인되자, 석탄 채굴을 위해 주위를 매립하였고 다이쇼 시대 이후는 철근 콘크리트조의 주택이 건설되었다. 해상에서 본 실루엣이 마치 일본 해군의 전함을 닮아 군칸지마로 불려왔다.

1916년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조의 집합주택 '30호동'이 건설되었다. 5년 후인 1921년에 나가사키 신문도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설중이었던 일본 해군전함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군칸지마라고 불렀기 때문에, 군칸지마라는 통칭은 다이쇼 시대 무렵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아직 철근 콘크리트조의 고층 아파트는 적었고, 대부분은 목조 단층집이나 2층집이었다.

태평양 전쟁이후 1940년 부터 1945년 까지 조선인 약 800명이 강제동원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석탄을 생산할 인구수가 부족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에 실시된 '국가 총동원법'을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을 강제 징용했다. 그들은 하루 12시간씩 탄광에서 노역을 했다. 인구가 전성기를 맞았던 1960년에는 5,267명이 하시마 섬에 거주하여, 인구 밀도는 제곱 킬로미터 당 83,600명으로 도쿄 23구의 9배 이상에 달했다. 탄광 시설, 주택 외에 초중학교, 점포, 병원, 사원, 영화관, 이발소, 미용실, 사교장 등이 있어 섬 안은 완벽한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화장장, 장지, 충분한 넓이와 시설이 있는 공원은 섬 안에 없어서, 하시마 섬과 다카시마 사이에 있는 나카노시마에 건설되었다.

1960년 이후에는 주요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어감에 따라 쇠퇴해갔다. 1965년에 미츠세 구역의 신광이 개발되어 일시기 회복되었지만, 1970년대 이후의 에너지 정책의 영향을 받아 1974년 1월 15일 폐산하였다. 폐산시에는 약 2,000명까지 줄었던 주민은 4월 20일까지 모두 섬을 떠나, 하시마 섬은 무인도가 되었다. 다카시마 광업소의 잔무정리 등 탄광 관련 시설의 해체 작업은 1974년 말까지 이어졌다.

 

현황

근대화 유산으로서, 그리고 다이쇼 시대로부터 쇼와 시대에 이르는 집합주택의 잔존물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폐허 붐의 일환으로서도 여러 차례 화제에 오른다. 현재는 무인화에 따라 건물의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 외벽의 붕괴 개소에 대해서는 일부 콘크리트로 수복이 진행되고 있다.

섬은 미쓰비시 마테리얼이 소유하고 있었지만, 2001년(헤세이 13년)에 다카시마 정에 무상으로 양도되어 현재는 나가사키 시의 소유지가 되었다. 건물의 노후화, 폐허화에 따라 위험한 곳이 많아, 섬 안으로의 출입은 오랫동안 금지되었다. 2005년(헤세이 17년) 8월 23일, 보도 관계자에 한해 특별히 상륙이 허가되어 황폐화가 진행되는 도내 각소의 모습이 각 매체에 소개되었다. 도내의 건축물은 아직 정비되지 않은 곳이 많지만 어느 정도는 한전면에서의 문제가 해결되어, 2008년(헤세이 20년) 나가사키 시에서 '나가사키 시 하시마 견학 시설 조례'와 '하시마에의 출입의 제한에 관한 조례'가 성립되었다. 이로써 섬의 남부에 정비된 견학 통로에 한해, 2009년(헤세이 21년) 4월 22일부터 관광객의 상륙, 견학이 가능해졌다. 이후 1개월간 4,601여 명, 1년간 59,000여 명이 상륙했다.

일부에서 세계유산 등록 운동이 진행되어, 2006년(헤세이 18년) 8월에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하시마 섬을 포함한 메이지 시대의 산업 시설을 지역 관광 자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계 유산 등록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헤세이 20년) 9월 '큐슈, 야마구치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의 일부로서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추가 기재가 확정되었고, 2009년(헤세이 21년) 1월 기재되었으며, 2015년(헤세이 27년) 6월에 정식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연관글

[역사보기] - 위안부, 차출 방법과 대상, 규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