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대군, 세종의 넷째 아들, 세조 반정을 지지하다.
임영대군, 세종의 넷째 아들, 세조 반정을 지지하다. 임영대군 이구(臨瀛大君 李璆, 1420년 1월 6일 ~ 1469년 1월 21일)은 조선시대 초기의 왕족, 정치인으로, 조의 제4대 왕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넷째 아들이다. 성은 이(李), 이름은 구(璆),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헌지(獻之)이다. 둘째 형인 수양대군처럼 무술에 능하였으나 궁녀와 대궐의 하녀들과의 성추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계유정난 이후 둘째 형인 수양대군을 지지하여 그를 도왔다. 예종 때의 정승 귀성군 이준의 아버지였고, 영의정 신승선의 장인이며,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는 그의 외손녀였다. 또 단경왕후의 친정아버지 신수근은 그의 외손자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생애 초반 임영대군 이구는 1420년(세종 2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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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 계유정난으로 사사당하다.
안평대군,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 계유정난으로 사사당하다. 안평대군 이용(安平大君 李瑢, 1418년 10월 18일(음력 9월 19일) ~ 1453년 11월 18일(음력 10월 18일))은 조선 전기의 왕족이자 서예가, 서화가, 시인, 작가이다. 이름은 이용(李瑢),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 낭간거사(琅玕居士), 매죽헌(梅竹軒)이며,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이다. 문종 · 세조의 친동생이자 금성대군의 형이었다. 육종영의 한 사람이다. 서예와 시문, 그림, 가야금에 능하였다. 한석봉과 함께 조선 최고의 명필로 불린다. 그는 1431년 숙부 성녕대군(誠寧大君)의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친형 수양대군과 갈등하다가 1453년 김종서, 황보인 등과 함께 정변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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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 세종 때 집현전 대제학으로서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등과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크다.
정인지, 세종 때 집현전 대제학으로서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등과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크다. 정인지(鄭麟趾, 1396년 12월 28일 ~ 1478년 11월 26일)는 조선 초기의 문신·성리학자이며 한글학자, 역사가, 정치인이다. 본관은 하동,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이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정리, 편찬하였고 용비어천가의 작곡자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포은 정몽주의 학통을 사사하고, 1414년(태종 1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 때 집현전 대제학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1424년 집현전관(集賢殿官)에 선발된 뒤 집현전에서 근무하며 훈민정음 연구에 참여하였고 1448년 이조판서가 되어 삼남 지방에 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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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다.
길재,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다. 길재(吉再, 1353년~1419년)는 고려후기의 문신이자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해평,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으로 불린다.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선산에 낙향하여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김숙자, 최운룡, 김종직 등을 통해 사림파로 학맥이 계승되었다. 생애 11세 때 절에 들어가 글을 배우고, 그 뒤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세 때인 1370년(공민왕 19) 박분에게 《논어》, 《맹자》를 배웠으며, 그 뒤 박분과 함께 개경으로 가서 이색, 정몽주, 권근의 제자가 되어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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