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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고인돌은 선사시대 돌무덤의 일종으로 영어로는 돌멘(Dolmen)이라고 한다. 고인돌은 거석기념물의 하나이며 피라미드(Pyramid), 오벨리스크(Obelisk)등 이집트나 아프리카 대륙의 각종 석조물과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列石)등이 모두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인 고인돌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 우리나라가 그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화순·강화고인돌유적(Gocha.. 더보기
경주 포석정지, 꺾어지고 굽이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 경주 포석정지, 꺾어지고 굽이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조성연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5)때로 본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본다.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 더보기
수원화성, 수원화성의 역사와 특징, 거중기 수원화성 수원화성 수원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거중기, 녹로 등 신기술과 신기재를 사용해 축조하였다. 화성은 군사적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매우 뛰어난 동양 성곽 중의 하나로 평가 받는다. 또한 화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그 필요를 절감케 된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극심했던 당쟁을 해결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가 자신의 원대한 구상을 실현할 새로운 개념의 계획적 신도시 건설을 꿈꾸며 축조한 성이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팔달문(八達門)과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長安門)을 포함한 4대문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화성행궁의 중심이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의 회.. 더보기
남한산성, 비상시 임시수도 남한산성 남한산성, 비상시 임시수도 남한산성은 극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영향을 바탕으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조선왕조의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한국의 독립성 및 한국 역사상 다양한 종교·철학이 조화롭게 공존해온 가치를 상징하는 유산입니다. 남한산성은 본성(한봉성과 봉함성을 포함)과 신남성(동서돈대)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으로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간 축성술과 도시 계획이 상호 교류한 증거입니다. 또한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 체계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며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가치를 보유합니다. 군사방어기술 구현 남한산성은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더보기
난중일기, 친필일기 난중일기 난중일기, 친필일기 『난중일기』는 이순신(1545~1598) 해군사령관이 1592년 1월1일 부터 1598면 11월17일 까지 군중 생활을 직접 기록한 친필일기입니다. 임진왜란 발발(1592년 1월) 이후부터 이순신이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7년의 기간을 망라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원래 임진일기(1592년), 계사일기(1593년), 갑오일기(1594년), 을미일기(1595년), 병신일기(1596년), 정유일기(1597년), 속정유일기(1597년), 무술일기(1598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1595년의 을미일기를 뺀 총7책이 보존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일기의 역사적 배경이었던 임진왜란은 외형적으로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치러진 전쟁이었지만 일본의 .. 더보기
승정원일기 승정원 일기 - 국가기록 관리체계의 모범,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는 국정 전반에 걸친 매일매일의 일기를 날짜 순으로 총 망라해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자세하고도 기본적인 사료가 됩니다. 조선시대 당시에도 정책에 참고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에서 전례를 찾았습니다. 국왕의 비서실 승정원 조선 태조 원년(1392) 7월에 반포된 관제에 의하면 원래 왕명출납의 일은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중추원의 중요 업무 중 하나였는데 이때 그 속아문으로 승지방을 설치하였습니다. 승지방은 왕명출납의 실무를 맡았고 그 장관으로 도승지를 두어 정3품으로 하였습니다. 물론 이때의 관제에 의하면 중추원은 왕명출납 이외에 군기도 관장하는 강력한 기구였습니다. 그러나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이 정권을 장악하자 사병을 폐지.. 더보기
종묘의 역사와 제도, 종묘 제례, 종묘제례악 종묘의 역사 종묘의 역사 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입니다. 종묘는 태조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습니다. 56,503평의 경내에는 종묘정전을 비롯하여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재실, 향대청 및 공신당, 칠사당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정전은 처음에 태실 7칸, 좌우에 딸린 방이 2칸이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광해군 즉위년(1608)에 다시 고쳐 짓고, 그 후 영조 와 헌종때 증축하여 현재 태실 19칸으로 되어있습니다 영녕전은 세종 .. 더보기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의 가치 장경판전은 세계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입니다. 장경판전은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양식을 보이는데 건물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 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 습도 조절등 보관을 위한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해인사에 위치한 대규모의 대장경판 보존의 보고 -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판 8만여 장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장경판전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하였습니다. 장경판전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 하며 동쪽과 서쪽에 작은 규모의 동,서사간판전이 있습니다. 장경판전은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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