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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김유신, 삼한일통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다. 김유신, 삼한일통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다. 김유신(金庾信, 595년 ~ 673년 음력 7월 1일(양력 8월 18일))은 신라의 군인 겸 정치가이자 외척이었다. 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한일통을 이루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신라의 장군이며 정치가이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문무왕(文武王)을 도와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을 보좌하였으며, 진평왕(眞平王)부터 문무왕에 이르는 다섯 명의 왕을 섬겨 신라 정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하였으며, 신하로서 왕으로 추봉된 유일한 인물이며, 무열왕 의 즉위 및 삼국 통일 전쟁 등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충장렬흥무대왕(純忠壯烈興武大 王)으로 추존되었다. 신라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후대 고려.. 더보기
삼국사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 삼국사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金富軾)이 1145년(인종 23)에 완성한 삼국시대사이다.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서,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정치적 흥망 변천을 주로 기술한 정사체(正史體)의 역사서이다. 편찬 시기 고려 왕조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 귀족 사회의 동요를 수습하고 난 뒤, 앞 시대의 역사를 공식으로 정리한 정사(正史)로서 기전체로 편찬했다. 고기(古記)·유적(遺蹟) 혹은 중국의 여러 사서에서 뽑아 편찬, 간행하였다. 《삼국사기》를 편찬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난 후에 임명된 벼슬에 감수국사(監脩國史)가 있어 이 무렵부터 편찬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설이 있고.. 더보기
광개토대왕, 고구려 19대 태왕 광개토대왕, 고구려 19대 태왕 태릉왕의 입구 광개토태왕(廣開土王, 374년 ~ 412년?, 재위: 391년 ~ 412년?)은 고구려의 제19대 태왕이다. 이름은 담덕(談德) 또는 안(安)으로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386년에 태자로 책봉되었고 391년에 즉위하였다. 《삼국사기》에는 392년에 즉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광개토태왕릉비의 기록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연호는 영락이다. 백제와의 전쟁 광개토태왕은 392년 7월에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북쪽 변경을 침공해 와서 석현성(石峴城)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다. 진사왕은 광개토태왕이 군사를 부리는 데 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막지 못하니 한수(漢水) 북쪽의 여러 부락들이 다수 함락되었다. 8월에 백제가 남쪽 변경을 침략해 왔으므로, 장수에게 명하여 .. 더보기
고구려 왕위 계보 길림성의 고구려 유적 고구려 왕위 계보 1.동명성왕(B.C.37~B.C.19) ― 2.유리왕(B.C.19~A.D.18) ― 3.대무신왕(18~44) ― 5.모본왕(48~53) | |---4.민중왕(44~48) | |----고재사------ |--5.모본왕(48~53) | |--6.태조왕(?53~?146) | |--7.차대왕(146~165) | |--8.신대왕(165~179) | |9.고국천왕(179~197) | |--10.산상왕(197~227)--11.동천왕(227~248)--12.중천왕—13.서천왕(270~292)----14.봉상왕(292~300) | |--고돌고----15.미천왕(300~331)----16.고국원왕(331~371)----17.소수림왕(371~384) | |--18.고국양왕(384~39..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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