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공빈김씨

사릉 광해군의 묘, 폐모살제와 외교정책에 불만을 품은 서인(西人)들이 인조반정을 일으키다. 사릉 광해군의 묘, 폐모살제와 외교정책에 불만을 품은 서인(西人)들이 인조반정을 일으키다.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 59 묘의 형식 : 쌍분 묘의 조성 : 1623년(인조 1), 1641년(인조 19) 묘의 구성 광해군묘는 조선 15대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류씨의 묘소이다. 묘소는 왕자 묘제의 예로 조성되었다. 쌍분의 형태로 조성되어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문석인, 망주석, 장명등, 상석, 향로석, 혼유석을 배치하였다.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광해군묘, 오른쪽이 문성군부인묘소로 각 봉분 앞에는 묘표석을 세웠다. 묘소 밑에는 재실터로 추정되는 주춧돌이 있다. 묘의 역사 1623년(인조 1)에 문성군부인 류씨가 강화도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음력 윤10월 29일에 양주 적.. 더보기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 광해군 폐위 후 시호와 능호 모두 삭탈되다.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 광해군 폐위 후 시호와 능호 모두 삭탈되다. 공빈 김씨(恭嬪 金氏, 1553년 11월 16일 ~ 1577년 6월 13일) 또는 공성왕후(恭聖王后)는 조선의 제 14대 왕 선조의 후궁이자 추존왕후이며 임해군, 광해군 형제의 생모이다. 광해군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왕후로 추존되어 자숙단인공성왕후(慈淑端仁恭聖王后)의 시호와 성릉(成陵)의 능호가 올려졌으나 광해군 폐위 후 시호 및 능호는 모두 삭탈되었다. 존호는 명헌(明獻)이다. 본관은 김해이다. 생애 사포(司圃)를 지내고 사후 증 의정부 영의정 해령 부원군(海寧府院君)에 추증된 김희철의 딸로 1553년 11월 16일 (음력 10월 11일)에 태어났다. 궁인으로 입궐하여 선조의 승은을 입은 뒤 내명부 정3품 소용(昭容)이 되었다. .. 더보기
광해군,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군 현대에 와서 재조명되다. 광해군,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군 현대에 와서 재조명되다. 광해군(光海君, 1575년 6월 4일 (음력 4월 26일) ~ 1641년 8월 7일 (음력 7월 1일))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혼(琿),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은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듯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