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첨,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폐서인해 죽이다.
이이첨,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폐서인해 죽이다. 이이첨(李爾瞻, 1560년 ~ 1623년 3월 14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득여(得與), 호는 관송(觀松)·쌍리(雙里), 본관 은 광주(廣州)이다. 선조 연산군 시절의 이극돈(李克墩)의 후손이다. 또한 이정립과 남인계열로 간 이덕형은 그의 일족이었다. 사상적으로 남명 조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정인홍의 문하생이다. 15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다시 1608년 중시(重試)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훗날 광창부원군(廣昌府原君)에 봉해졌다. 북인이었다가 북인이 대북, 소북으로 나뉠 때는 대북에 가담했으며, 대북의 지도자였다. 선조 말기에 영창대군을 세자로 세우려는 소북의 음모를 저지하였으며, 광해군 즉위 이후 류영경과 임해군, 영창대군 등을 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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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원, 정명공주의 부마, 어승마의 하사로 인해 사간원의 간쟁을 받다.
홍주원, 정명공주의 부마, 어승마의 하사로 인해 사간원의 간쟁을 받다. 홍주원(洪柱元, 1606년? ~ 1672년)은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인 정명공주(貞明公主)의 부마이다. 홍영(洪霙)의 아들이고, 문충공(文忠公) 이정귀(李廷龜)의 외손이다. 본관은 풍산이며, 자는 건중(建中), 호는 무하(無何)이다. 생애 어려서 외조부 이정귀(李廷龜)와 김류(金瑬)에게 글을 배웠으며 관례를 치르기 전 향시에 합격하였다. 1623년 9월 26일 간택을 받아 정명공주와 혼인하였고, 그 다음날 숭덕대부(崇德大夫) 영안위(永安尉)의 관직을 제수 받았다. 혼인 몇 달 후 인목대비가 어승마(御乘馬)를 홍주원에게 하사하자 사간원의 간쟁을 받았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우의정 신흠(申欽), 서평부원군 한준겸(韓浚謙)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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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공주,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 영창대군의 누나
정명공주,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 영창대군의 누나 정명공주(貞明公主, 1603년 6월 27일(음력 5월 19일) ~ 1685년 9월 8일(음력 8월 10일))는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이며 영창대군의 누나이다. 광해군 때 폐서인되어 어머니와 함께 감금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인조반정 후 공주로 복권되고 중추부동지사 홍영의 아들 홍주원과 결혼했다.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 홍국영, 원빈 홍씨 등은 모두 그의 후손들이었다. 유년기 1603년 6월 27일(음력 5월 19일) 선조와 인목왕후 김씨 사이에서 선조의 21번째 자식이자 10번째 딸로 태어났으며, 선조에게는 유일한 적녀이다. 선조는 52세의 나이에 본 늦둥이 딸 정명공주를 무척 귀여워했으나 이복오빠 광해군이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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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붉은 갑옷을 입고 용맹하게 왜군을 무찌른 홍의장군(1)
곽재우, 붉은 갑옷을 입고 용맹하게 왜군을 무찌른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1552년 8월 28일 ~ 1617년 4월 10일)는 조선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의병장이다. 34세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문장의 글귀가 왕의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고, 40세가 넘도록 고향에서 학문과 낚시질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관군이 일본군에게 전멸당하자, 당시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스스로 의병을 조직, 붉은 비단으로 된 갑옷을 입고 활동하여 천강홍의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의 용맹성에 놀란 왜병들은 곽재우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다 한다. 여러번 승리한 공로로 찰방, 조방장 등을 지낸뒤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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