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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이황, 영남학파의 중추적 학자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다. 이황, 영남학파의 중추적 학자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다. 이황(李滉, 1502년 1월 3일(1501년 음력 11월 25일) ~ 1571년 1월 3일(1570년 음력 12월 8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이언적의 사상을 이어받아 영남학파의 중추적 학자가 되었으며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가 되었다. 학맥은 동서 분당 뒤에 동인의 핵심을 이루고, 다시 동인이 남인-북인으로 갈릴 때, 이황 제자들은 남인, 조식 제자들은 북인을 이룬다. 출생과 가정 환경 퇴계 이황은 1501년 경북 안동부 예안현(오늘날의 안동시 예안면) 온계리(溫溪里)에서 진사(進士) 증 의정부좌찬성 이식과 부인 문소김씨(2남 1녀) .. 더보기
황윤길,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견하다. 황윤길,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견하다. 황윤길(黃允吉, 1536년 ~ 몰년 미상)은 조선 중기의 문신, 외교관, 정치인이다. 자는 길재, 호는 우송당, 본관은 장수이다. 당색으로는 서인이다. 1590년 선조 때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변란의 가능성을 보고했지만, 채택되지 못했다.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견하여 유명하여졌다. 생애 황희의 5세손으로 그의 가계는 훈구파였지만 그는 사림파에 가담하여 출사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송강 정철 등과 가까이 지냈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선조 때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왔다. 조선통신사 각처에서 활약하던 일본의 무사들을 정리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루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선조가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고 정탐 을 위해 사람을 보냈는데, 조선에서.. 더보기
김성일, 잘못된 판단으로 임진왜란 발발 이후 큰 비판을 받다. 김성일, 잘못된 판단으로 임진왜란 발발 이후 큰 비판을 받다. 김성일 (金誠一, 1538년~1593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의성, 호는 학봉(鶴峰), 자는 사순(士純)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 시호는 문충공 서애 류성룡과 함께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은 수제자로 임진왜란 때 초유사로 순절하였다. 1590년 일본에 통신사 부사로 갔다와서 일본이 침략을 하지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여 보고함으로써 임진왜란 발발 이후 큰 비판을 받았다. 안동에 자리한 학봉종택은 안동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의 전형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1562년 승려 보우(普雨)의 말에 따라 문정왕후가 희릉(禧陵)을 옮기려 하자, 유생의 신분으로 이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지었다. 1564년 진사시, 1567년 대과에 합격.. 더보기
정여립의 난, 기축옥사 역모인가? 조작인가? 사진 출처 : 디지틀 조선 정여립의 난, 기축옥사 역모인가? 조작인가? 기축옥사(己丑獄事)는 조선 선조 때의 옥사로 1589년 10월의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으로부터 시작되어 정여립과 함 께 3년여간 그와 연루된 많은 동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여립의 옥사로도 부른다 . 정여립은 호남 지역에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무술 연마를 하며, 1587년에는 왜구를 소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대동계의 조직은 더욱 확대되어 황해도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이들의 동정이 주목을 받게 되고, 마침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당시 황해도 관찰사의 고변이 임금에게 전해지자 조 정은 파란을 일으켰다. 고변의 내용은 정여립의 대동계 인물들이 한강의 결빙기를 이용해 황해도와 전라도에서 동시에 봉기하여 입경하고 대장 신 립과 .. 더보기
유성룡,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다간 조선의 명재상 (1) 유성룡의 편지 서신 유성룡,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다간 조선의 명재상 류성룡(柳成龍, 1542년 11월 7일(음력 10월 1일) ~ 1607년 5월 31일(음력 5월 6일))(류성룡)은 조선 중기의 관료, 인문학자, 의학자, 저술가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경상도 의성의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간성군수 유작(柳綽)의 손자이며,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柳仲郢)의 차남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조목(趙穆)·김성일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계기로 강경파인 이산해, 정인홍 등과 결별하고 남인을 형성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과 원균.. 더보기
임진왜란, 전쟁발발의 배경 임진왜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 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이 왜란을 일본에서는 ‘분로쿠(文祿)?케이초(慶長)의 역(役)’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으로부른다. 전쟁발발의 배경 조선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전쟁 초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력이 쇠약해진 것왜란이 일어난 선조대에 이르러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중쇠(中衰)의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는 4대 사화(四大士禍)와 훈구(勳舊)와사림(士林) 세력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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