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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변

민족 말살 통치기 (1931년 ~ 1945년) 민족 말살 통치기 (1931년 ~ 1945년) 일본의 대륙진출기 1931년 일제는 만주 사변을 일으킨다. 일제는 중화민국을 비롯한 대륙으로의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한반도를 일본의 중국 대륙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고, 이에 따라 일본의 경제적 지배 정책도 병참 기지화로 선회하였다. 이 시기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 등을 공포하여 사상 통제를 강화하였고 일선동조론과 같은 역사 날조도 자행되었다. 일제는 대공황 이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보호 무역 강화로 면방직 원료의 공급이 부족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에 남면 북양 정책을 수립하여 공업 원료를 증산하기 위해 남부에는 면화 재배와 북부의 면양 사육을 독려하였다. 그리고 대륙 진출을 위한 병참 기지화 정책에 따라,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발전소를 건립하고 광업 분야.. 더보기
이회영, 체포와 옥사, 그의 죽음 원인은?(4) 이회영, 체포와 옥사, 그의 죽음 원인은? 만주사변 전후 1930년 4월 20일에 유자명, 장도선, 정해리, 유기석 등은 아나키스트 무력투쟁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결성하였으나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만주 사변 이후에 이회영, 정현섭, 백정기 등의 주요 아나키스트 거물들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 단체는 기관지인 남화통신을 발간하였다. 이회영은 1931년 남화한인청년연맹과 연대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32년초 상해 사변이 일어나자 이회영은 중국 국민당을 찾아아 교섭, 자금과 무기지원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공격, 만주침략이 발발하자 중국에 있던 독립운동 동지들이 상하이로 집결하여 협의기구로 조직한 항일구국연맹의 의장에 피선되었다. 흑색 공포단..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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