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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문정왕후의 섭정과 권력장악으로 인사문제에 개입하다. 문정왕후의 섭정과 권력장악으로 인사문제에 개입하다. 문정왕후는 1545년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아들 명종의 뒤에서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하였다. 역사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수렴청정은 어린 왕을 대신하여 정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멘토의 역할이었다. 정치경험이 없는 어린 왕이 정치에 대해 대신들과 토론한 내용을 같이 보면서,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그녀의 수렴청정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유관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에 반대하였는데 이를 빌미로 을사사화 때 제거한다. 명종이 즉위하자 대비 겸 섭정이 된 문정왕후는 축출된 윤원형과 윤원로를 불러들인다. 윤원형 형제는 문정대비를 등에 업고 음모를 꾸민다. 예조참의로 재등용된 윤원형은 형인 윤원로의 책동이 실패하자, 이들 대윤.. 더보기
강릉 명종의 묘, 소윤과 문정왕후의 권세에 눌려 뜻을 펴보지 못하다. 강릉 명종의 묘, 소윤과 문정왕후의 권세에 눌려 뜻을 펴보지 못하다. 위치 :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능의 형식 : 쌍릉 능의 조성 : 1567년(선조 즉위), 1575년(선조 8) 능의 구성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강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전체적인 능침은 문정왕후의 태릉과 같은 형태로 조성하여,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능침아래에는 홍살문, 향·어로, 정자각, 비각이 있고, 정자각 왼편에는 둥근 어정(御井)이 있다. 어정이란 왕이 마실 물을 위해 판 우물을 말한다. .. 더보기
윤원로, 문정왕후의 동생,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 유배되다. 윤원로, 문정왕후의 동생,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 유배되다. 윤원로(尹元老, ? ~ 1547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척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아들이자 윤원형의 형, 윤원량과 윤원필,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대윤의 영수 윤임은 그의 아버지 윤지임과 8촌형제 간이 된다. 김안로와도 사돈간이 되는데, 김안로의 아들 김희와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 효혜공주의 장녀 김선옥은 그의 아들 윤백원과 결혼했다. 또한 그의 형 윤원량의 딸 숙빈 윤씨는 인종의 후궁이었다. 김안로의 사돈이면서 중종과는 처남매부간이자 인종의 처숙부이고 명종의 외숙부이자 중종의 딸 효혜공주의 사돈으로, 중종과는 이중 삼중 인척관계에 있었다. 생애 1515년 장경왕후가 원자(훗날의 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15.. 더보기
김효원, 동인과 서인의 붕당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다. 김효원, 동인과 서인의 붕당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다. 김효원(金孝元, 1542년 ~ 159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이황과 조식의 문인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일선)으로, 자는 인백(仁伯)이고 호는 성암(省庵)이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식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훈구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소장파 관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심의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다음해 심충겸이 이조전랑에 천거되자 외척임을 들어 적극 반대하여 사림을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으로 갈라지게 하였다. 노수신과 이이의 조정책으로 외직으로 전출된 후 10년 간 한직(閒職)을 전전했다... 더보기
인종,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다. 인종,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다. 인종(仁宗, 1515년 3월 10일 (음력 2월 25일) ~ 1545년 8월 7일(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2대 임금(재위 1544년 ~ 1545년)이다. 성은 이(李), 휘는 호(峼),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천윤(天胤)이다. 사후 시호는 인종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仁宗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이며 중종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인 인성왕후이다. 생애 인종은 실록에 따르면, "전하께서는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화려한 치장을 한 궁녀들을 쫓아내었고, 우애가 깊어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주었다."라는 구절이 .. 더보기
명종,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키다. 명종,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키다. 명종(明宗, 1534년 7월 3일 (음력 5월 22일)~ 1567년 8월 2일 (음력 6월 28일))은 조선의 제13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환(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양(對陽). 사후 시호는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이며 중종의 차남으로 문정왕후의 유일한 친아들이다. 이복 형 인종(부왕 중종의 적장자)이 후사 없이 붕어하기 3일 전 인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로 모후인 문정왕후의 섭정, 친정 이후에는 외척인 윤원형, 윤원로, 윤춘년, 윤백원, 이량, 심연원, 심통원 등에 의해 정사가 좌지우지되면서 혼란을 겪었다. 아들 순회세자를 일찍 잃고 이복.. 더보기
윤원형, 사후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나 1907년 이완용의 건의로 사면 복권되다. 윤원형, 사후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나 1907년 이완용의 건의로 사면 복권되다. 윤원형(尹元衡, 1509년 ∼ 1565년 11월 18일)은 조선 중기의 외척이자 문신으로, 파산부원군 윤지임과 전성부대부인 전의 이씨(全城府夫人 全義李氏)의 넷째 아들이자 문정왕후의 남동생이며, 윤원량 · 윤원로의 동생이며 소윤(小尹)의 영수이다. 명종의 외숙으로 윤임, 김안로, 이량, 심통원 등과 함께 인척세력의 대표적 인물이며 을사사화를 날조했다. 정난정은 그의 첩이었다. 본관은 파평(波平). 자는 언평(彦平)이다. 1533년(중종 28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으로 관직에 올랐으며 외조카인 경원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노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친족인 윤임, 처당숙 김안로(金安老) 등과 갈등했다. 김안로의 공격으로 유배되었.. 더보기
정난정, 윤원형의 애첩, 악녀의 대명사 정난정, 윤원형의 애첩, 악녀의 대명사 정난정(鄭蘭貞, ? ~ 1565년 11월 13일)은 조선 중기의 외척이며 명종의 넷째 외삼촌이자 재상인 윤원형의 애첩이자 그의 둘째 부인이다. 명종조의 권력자 중 한 명으로,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사후 사림파는 그녀를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었다. 본관은 초계(草溪)로 아버지는 도총부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이고, 정난정은 그와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였다. 한성부 출신. 출생과 가계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차실(次室) 남씨(南氏)의 2남 3녀 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모친은 본래는 상민이 아니었으나 난신에 연좌된 부녀로서 노비가 되었고, 정윤겸의 집에 분배되었다. 그는 정윤겸과 노비가 된 반가 여성 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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