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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효혜공주, 중종의 장녀, 산후병으로 향년 21세로 사망하다. 효혜공주, 중종의 장녀, 산후병으로 향년 21세로 사망하다. 효혜공주(孝惠公主, 1511년 6월 13일(음력 5월 18일) ~ 1531년 5월 6일(음력 4월 20일))는 조선 중기의 공주이다. 제11대 왕 중종의 장녀로,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소생이다. 제12대 왕 인종의 친누나이자 김안로의 며느리이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옥하(玉荷)이다. 생전 부친인 중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김안로가 복관하는 데에 구실을 만들어준 존재이다. 생애 1511년(중종 6) 6월 13일(음력 5월 18일) 탄생하였다. 1515년(중종 10) 3월 16일(음력 3월 2일) 5세 때 모후인 장경왕후를 여의었다. 어머니를 잃은 후 성종의 후궁인 남씨와 이모 윤씨에 의해 양육되었다. 1520년(중종.. 더보기
김안로, 시비걸기를 좋아하여 여러차례 옥사를 일으키다 김안로, 시비걸기를 좋아하여 여러차례 옥사를 일으키다. 김안로(金安老, 1481년 ~ 1537년 10월 27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외척이다. 자는 이숙(頤叔), 호는 희락당(希樂堂), 용천(龍泉), 퇴재(退齋),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김전의 형 김흔의 셋째 아들이다. 김제남의 종증조부이다. 중종의 딸 효혜공주(孝惠公主)의 남편인 연성위(延城尉) 김희(金禧)는 그의 아들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홍문관과 사간원 등의 요직을 거쳐 대사간을 지냈다. 언관으로 있으면서 여러 시정의 폐단을 해소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시비걸기 좋아하는 인물로 몰리기도 했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와 함께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희가 중종의 장녀 효혜공.. 더보기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尹任, 1487년 ~ 1545년 8월 30일)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인척. 자는 임지(任之), 본관은 파평이다. 영돈녕부사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윤여필의 아들이자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의 오빠로,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중종을 옹립하는데 기여하였다. 1512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이르렀다. 누이 장경왕후 사후에 자신의 집안인 파평 윤씨에서 문정왕후를 새 왕비로 추천하였는데, 이후 윤원형 일가와는 앙숙이 됐다. 이후 대윤(大尹)의 거두로 윤원형, 윤원로 등 소윤(小尹) 일파와 대립하였다. 윤임은 인종의 외삼촌이었고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이었는.. 더보기
양재역 벽서 사건, 윤임의 잔존 세력을 숙청하다. 양재역 벽서 사건, 윤임의 잔존 세력을 숙청하다. 양재역 벽서 사건이란 경기도 양재역의 벽면에 이런 내용의 벽서가 나붙었던 사건을 말한다. "위로는 여왕(문정왕후), 아래로는 간신이 날뛰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다." 윤원형은 이 벽서 사건이 윤임 잔당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조정에 남은 윤임의 잔존 세력을 모두 숙청했다. 윤원형이 윤임의 잔존 세력에 사림을 포함시킴으로써 갓 조정에 진출했던 사림은 또다시 커다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양재역 벽서 사건을 계기로 을사사화를 피한 사림이 대다수 끌려와 형문을 당하고 유배, 파면당했다.(정미사화) 이 과정에서 사림파의 희생을 막으려는 이언적 등과 갈등, 이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언적을 정계에서 축출한다. 이어 윤원형은 1546년(명종 1년) 1월 자헌대부로 승진한 .. 더보기
원경왕후, 태종의 비, 가장 정치적인 왕비 원경왕후, 태종의 비, 가장 정치적인 왕비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1365년 7월 29일 (음력 7월 11일) ~ 1420년 8월 18일 (음력 7월 10일))는 조선 태종(太宗)의 왕비이자 조선 세종대왕(世宗大王)의 모후이다. 여흥부원군 문도공 민제(驪興府院君 文度公 閔霽)의 둘째 딸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남편 태종이 왕이 되는 데 막대한 역할을 했으나 후일 남편에 의해 친정이 멸문당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조선 왕조에서 정희왕후, 문정왕후와 더불어 가장 정치적인 왕비이며, 성격 또한 담대하고 괄괄하였다. 개경 철동에서 태어났다. 18세인 1382년에 황산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장 이성계의 5남이자, 아버지 민제의 제자인 이방원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결혼 후 10년 동안 위화도 회군,.. 더보기
수렴청정, 수렴청정을 한 조선의 왕후들 수렴청정, 수렴청정을 한 조선의 왕후들 수렴청정(垂簾聽政)은 동아시아에서 나이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또는 큰어머니나 작은어머니가 대리로 정치를 맡는 일을 말한다(→섭정). 말의 어원은 왕대비가 남자인 신하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왕의 뒤에서 발을 내리고 이야기를 듣던 데에서 비롯하였다. 엄밀히 말해 수렴청정과 섭정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섭정하는 사람이 여자이면 수렴청정으로 여긴다. 한국에서 수렴청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구려 태조대왕이 7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모후인 태후 부여씨가 섭정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조선 왕조의 수렴청정 성종 : 13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할머니인 정희왕후 윤씨가 대왕대비로서 7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명종 : 12세의 나이로 즉위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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