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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

삼둔자 전투, 일본군 육군이 최초로 중국 대륙을 침공한 사건 삼둔자 전투, 일본군 육군이 최초로 중국 대륙을 침공한 사건 삼둔자 전투(三屯子戰鬪)는 1920년 6월 4일 새벽 5시부터 6월 6일 자정까지 대한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의 독립군 연합부대와 신민단 예하 이흥수의 신민단 독립군 1개 중대가 연합, 만주 북간도 화룡현(和龍縣) 월신강변 삼둔자(三屯子)에서 니히미 지로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 남양수비대(南陽守備隊) 예하 1개 중대를 격파한 소규모 전투였다. 한국인 독립군이 국내 진공을 목적으로 일본군을 선제 공격한 사건이기도 하다. 봉오동 전투로 이어지며 넓게는 봉오동 전투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6월 4일 새벽에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에서 출발한 독립군 홍범도, 최진동 부대의 1개소대와 신민단 독립군 예하 1개 소대가 당일 새벽 5시 경 함경북도 종성군 .. 더보기
간도참변,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인을 대량 학살하다. 간도참변,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인을 대량 학살하다. 간도참변(間島慘變) 또는 경신참변(庚申慘變) 1920년 일제는 만주의 관동군에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병력까지 합류시킨 대규모 정규군을 간도로 보내,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그 지방에 살고 있던 무고한 한국인을 대량으로 학살하였다. 경신참변 또는 경신간도학살사건이라고도 한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독립군 양성기관이 설립되고 무장한 독립군 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국경을 여러 번 넘어 국내로 진공하여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을 크게 타격하였다. 일제는 위협 반 회유 반으로 만주의 중국 군벌까지 그들 편으로 끌어들여 합동으로 독립군 토벌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만주 거주 조선 민중의 .. 더보기
홍범도, 봉오동 전투에서 120명을 사살하고 최대의 전과를 올리다. 홍범도, 봉오동 전투에서 120명을 사살하고 최대의 전과를 올리다. 홍범도(洪範圖,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 ~ 1943년 10월 25일)는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며,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다. 사냥꾼으로 활동하여 사격술에 능하였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에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이끌었다. 1943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76세로 사망하였다. 생애 평안도 평양 서문안 문열사 부근에서 출생하여 평안도 양덕과 평안도 자성에서 성장한 그는 청년 시절부터 머슴, 건설현장 노동자, 종이공장 노동자, 사냥꾼, 광산 노동자 등을 전전하였다. 의병과 독립군 활동 28세 시절이던 1895년경부터 의병에 뛰어들어 함경북도 갑산, 무산 등지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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