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분열 통치기 (문화 통치기, 1919년 ~ 1931년)
민족 분열 통치기 (문화 통치기, 1919년 ~ 1931년) 3·1 운동에 의해 일본 정부나 총독부 측에서는 기존의 통치 방식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파견을 기점으로 기존의 강압적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로 그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그 결과 일부 단체 활동 및 언론 활동이 제한적으로나마 허가되기 시작하였고, 아주 기초적인 초등 교육과 농업 교육만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민생 안정보다 회유책에 불과한 것으로, 친일파 양성을 통해 한민족의 분열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한반도에서 식민 통치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사이토 총독의 대책문에서 뚜렷히 알 수 있다. 1.핵심적 친일 인물을 골라 그 인물로 하여금 귀족, 양반, 유림, 부호, 교육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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