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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

견훤, 금성전투, 공산전투, 고창전투, 운주성 전투, 신검의 정변 견훤, 금성전투, 공산전투, 고창전투, 운주성 전투, 신검의 정변 금성 전투 견훤은 지금의 전라남도 지역을 석권하고 후백제를 선포한 이듬해에 진출방향을 지금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으로 돌려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편 견훤으로부터 비장의 지위를 받기도 했던 양길은 899년 7월에 궁예를 치기 위해 국원경 등 10여 성의 성주들을 끌어들여 궁예를 쳤으나 거꾸로 비뇌성 아래에서 패하고, 901년 궁예는 후고구려(後高句麗)를 선포하였다. 903년에는 수군 기습에 의해 금성(錦城, 나주) 일대의 10여 군현을 빼앗겼다. 906년에는 상주 사화진 일대에서 패전하였다. 907년 견훤은 일선군 이남의 10여 성을 장악하였다. 금성을 후고구려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후방이 고려에 노출됨과 동시에 바다를 .. 더보기
공산전투, 왕건 후백제군에게 포위당해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다. 공산전투, 왕건 후백제군에게 포위당해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다. 공산 동수 전투(公山棟藪戰鬪)는 후삼국 시대인 927년 신라 공산(公山, 현 팔공산) 동수(棟藪, 현 지묘동)에서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른 전투로 견훤이 왕건군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고 이곳에서 신숭겸 등 8명의 장수가 전사해 지명이 공산에서 팔공산으로 바뀌었다는 설화도 있고 반야월 등 대구의 대표 지명들이 이 전투에서 생겼다. 배경 후삼국 시대 당시 고려와 후백제는 처음에는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나 926년 9월에 후백제 왕 견훤이 고려 근품성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로 고려와 후백제는 수차례에 걸쳐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는 대체로 고려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견훤이 신라의 무관 출신임에도 불구.. 더보기
신사임당, 존경하는 어머니상의 전형으로 추앙되다 신사임당, 존경하는 어머니상의 전형으로 추앙되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년 12월 5일(음력 10월 29일) ~ 1551년 6월 20일(음력 5월 17일)) 또는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는 조 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었다.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본명은 인선(仁善)으로 사임당은 그의 당호(堂號)이다.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기묘사화로 관직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한 아버지 신명화로부터 성리학을 교육받았으며, 아버지가 아 들없이 죽자 경기도 파주의 시댁과 강원도 강릉의 친정집을 오가면서 친정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일찍 병사하였지만 아들 이이는 대학자.. 더보기
신숭겸,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사하다. 신숭겸 장군의 묘 신숭겸,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사하다. 신숭겸(申崇謙, 전라남도 곡성군 용산재, ? ~ 927년 9월?)은 후삼국시대 태봉 말기 및 고려 초기의 무신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궁예의 부장이었으나 918년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기여하였으며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바꾸 어 입고 대신 전사하였다. 견훤의 후백제군이 그의 시신에서 수급을 베어 갔으므로 고려 태조는 순금으로 두상(頭像)을 만들어 시신과 같이 매장하였 다 한다. 원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 또는 능산(能山)이며, 시호는 장절(壯節), 평산 신씨의 시조이다. 몸이 장대하고 무용에 출중했다. 고려 개국 초명은 삼능산(三能山)이다. 후에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신씨의 성과 평산을 관향으로 하사.. 더보기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다. 훈요10조, 호족의 유화정책, 북진정책, 불교장려정책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다. 훈요10조, 호족의 유화정책, 북진정책, 불교장려정책 태조(太祖, 877년 1월 31일 (음력 1월 14일) ~ 943년 7월 4일 (음력 5월 29일))는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의 장군이자 고려의 초대 왕(재위기간 : 918년 7월 25일 - 943년 7월 4일)이다. 성은 왕(王), 휘는 건(建),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약천(若天), 이다. 연호는 천수(天授)이다. 송악의 호족 왕륭(王隆)과 그 부인 한씨(韓氏) 사이에서 877년에 태어났으며, 896년에 궁예(弓裔)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장수 가 되었다. 후백제와의 교전에서 거듭 승리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 지역에서 견훤의 군사를 여러 번 격파하고 906년 상주의 사화진, 909년 진도 부근의 도서와 나주를 공략하였.. 더보기
신립,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다. 신립,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다. 신립(申砬, 1546년 10월 23일 ~ 1592년 4월)은 조선 시대의 무신이자 장수로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도총부와 진주판관, 임진 왜란 첫 해에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고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군이다. 신숭겸의 후손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입지(立之)라 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생애 신립은 명종 원년(1546년) 10월 23일 평산 신씨 화국과 부인 파평 윤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시조 신숭겸은 고려 왕건의 개국공신으로 그 뒤 조선 전기의 문신 신개는 조선 건국 이후 좌의정을 지내고 문희공의 시호를 받았다. 신개는 신립의 5대조였다. 고조 신자준은 음보로 기용되어 세종 27년(1445) 장령이 되고, 세조 원년(1455) 판종부시사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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