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쌍성총관부

이자춘, 이성계의 아버지, 쌍성총관부를 탈환할 때 고려에 귀순하다. 이자춘, 이성계의 아버지, 쌍성총관부를 탈환할 때 고려에 귀순하다. 이자춘(李子春, 1315년 ~ 1361년 1월)은 원의 관료이자 고려의 무신이며 조선의 추존왕이다.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몽골식 이름은 울루스부카(Ulus-Buqa, 한국 한자: 吾魚思不花 오어사불화)이다. 원나라의 천호로 있다가 1356년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탈환할 때 고려에 귀순하였다. 대중대부사복경과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 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되었고 조선 건국 후 아들 이성계에 의해 환왕(桓王)으로 추존되었다가 다시 환조 연무성환대왕(桓祖 淵武聖桓大王)으로 추존되었다. 생애 아버지 이춘(李椿)의 사후 형인 이자흥(李自興)마저 연이어 사망하자 어린 조카인 이교주(李咬住)를 대신하여 원.. 더보기
쌍성총관부, 공민왕,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다. 쌍성총관부, 공민왕,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다.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는 1258년에 원나라가 함경남도 화주(和州 : 영흥)에 설치한 통치기구이다. 쌍성총관부는 동녕부와 함께 고려인의 배반으로 원나라에 직속령이 되는 영토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통치 기간이 100여 년간 유지되었다. 공민왕은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주권 회복 및 영토 회복을 위한 북벌 정책의 핵심으로, 이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격 파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았다. 설치 1258년(고종 45년)에 원나라의 별장 산길(散吉)과 보지(普只)가 동여진(東女眞)을 경유하여 장성(長城) 이남을 침공했다. 이들이 화주에 이르자 당시 동북면병마사 신집평(愼執平)은 주민들과 병사들을 이끌고 저도(楮島)에 들어가 지키다가 죽도 (竹島)로 이동하였다. 그.. 더보기
공민왕, 반원자주화, 개혁정치, 성균관을 재건하다. 공민왕, 반원자주화, 개혁정치, 성균관을 재건하다. 공민왕(恭愍王, 1330년 5월 23일 (음력 5월 6일) ~ 1374년 10월 27일 (음력 9월 22일), 재위: 1351년 ~ 1374년)은 고려의 제31대 국왕이다. 초명은 기(祺), 휘는 전(顓), 호는 이재(怡齋)와 익당(益堂), 우왕 2년에 조정에서 올린 시호는 인문의무용지명열경효대왕(仁文義武勇智明烈敬孝大王)이며, 같은 왕 11년에 명에서 받은 시호는 공민왕(恭愍王)이다. 충숙왕의 차남이며, 몽골식 이름은 바얀 테무르(伯顔 帖木兒, 몽골어:、Bayan Temür)이다. 즉위 초반에는 무신 정권의 세력 기반을 혁파하고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국을 선언하였으며 승려 신돈을 등용하여 개혁정책을 펼쳤으나 노국대장공주의 사후 개혁의지를 상실하였..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