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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

요동정벌, 이성계 일파의 4불가론 요동정벌, 이성계 일파의 4불가론 요동 정벌(遼東 征伐)은 명나라가 철령 이북 지역에 철령위를 설치하려는 것에 반발하여 고려가 요동을 경략(經略)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그러나, 이는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져 고려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역시 요동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요동 문제 요동은 남만주(南滿州) 요하(遼河)의 동쪽 지방으로, 요동반도(랴오둥 반도)를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한민족(韓民族)과 한족(漢族), 북방 민족 사이의 쟁탈 지역이 되어 왔다. 본래 고조선의 영역이었으나, 고조선이 기원전 290년경에 연나라 장수 진개와의 전쟁에 패해 서쪽 경계가 2천리 동쪽으로 이동함으로써 고조선의 판도에서 벗어났다. 전국시대 .. 더보기
창왕, 폐가입진을 내세워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다. 창왕, 폐가입진을 내세워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다. 창왕(昌王, 1380년 9월 6일 (음력 8월 7일) ~ 1389년 12월 31일 (음력 12월 14일)은 고려 제33대 국왕(재위: 1388년 ~ 1389년)이다. 휘는 창(昌)이며, 거기에 임금을 뜻하는 왕(王)을 붙여 부르는 명칭으로, 정식 시호는 없다. 이는 폐가입진(廢假立眞)과 연관이 있다. 후에 고려의 유신들이 윤왕(允王)이라 불렀으나 이는 비공식 시호인 사시(私諡)에 해당된다. 그밖에 후폐왕(後廢王)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위와 폐위 배경 1388년 이성계(李成桂)가 우왕을 폐위시키고 9세의 나이인 왕창을 즉위시켰으며, 1389년 재위 1년 만에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었다. 1389년 11월 아버지 우왕과 모의해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다.. 더보기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2)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2) 석방과 교육활동 1377년에유배에서 풀려나 4년간 선향 영주와 안동, 제천, 원주 등을 오가며 유랑하며 지냈다. 그 뒤 1381년 가을 거주가 완화되자 삼각산 옛집으로 돌아왔고 1382년 초려(草廬)를 지고 '삼봉재'(三峯齋)라 이름하고 학문과 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권문세족들은 정도전을 위험 인물로 보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전국에서 많은 재생들이 운집하여 교육의 즐거움을 향유하였으나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이곳 출신 재상이 삼봉재를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생들을 이끌고 부평부사 정의에 의탁하여 부평부 남촌(南村)으로 이사하여 후생 교육사업을 재기 하였으나 이곳 역시 재상 왕모(王某)가 별장을 짓는다고 학숙을 폐쇄하였다. 계속되는 멸시와 박해로.. 더보기
진안대군, 이방우, 술을 마시고 병이 나서 졸하다. 진안대군, 이방우, 술을 마시고 병이 나서 졸하다. 진안대군(鎭安大君, 1354년 ~ 1394년 1월 15일(1393년 음력 12월 13일))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며, 조선 초기의 왕족, 시인이다. 이름은 이방우(李芳雨)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사호(祠號)는 청덕(淸德), 시호(諡號)는 경효(敬孝)·정의(靖懿)이다. 생애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안변 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고려 말에 과거(문과)에 급제하여 예의판서(禮儀判書)와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고려 우왕 14년(1388년)에 부친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처자를 데리고 교주강릉도 철원 보개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도 국가 일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고 서해도 해주로 옮겨 가서 서너달 살다가,.. 더보기
신의왕후, 태조의 아내, 향처로 전락하여 자식들과 여생을 보내다. 신의왕후, 태조의 아내, 향처로 전락하여 자식들과 여생을 보내다.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10월 21일(음력 9월 23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첫 아내로 정종과 태종의 생모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에 지병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안천부원군 한경(安川府院君 韓卿)과 삼한국대부인 신씨(三韓國大夫人 申氏)의 딸로 본관은 안변(安邊)이다. 태조 2년(1393년)에 절비(節妃)로 추증되었다가 1398년 그녀의 소생들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태조가 하야하고 그녀의 둘째 아들인 정종이 즉위하여 비로소 왕후로 승격되었다. 시호는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이며,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더보기
완풍대군, 이성계의 이복형,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반대하다 완풍대군, 이성계의 이복형,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반대하다. 완풍대군(完豊大君, 1330년 ~ 1388년 10월 23일) 또는 완산군(完山君)은 고려 시대 후기의 무신·군인·관료·시인 이며 환조 이자춘의 아들이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복 형으로 이름은 이원계(李元桂)이다. 그는 일찍이 무과와 문과에 모두 급제를 하였으며 홍건적의 난 이후 두 차례의 홍건적의 침략을 격퇴하였고, 군 원수로서 이성계, 변안렬 등과 함께 왜구의 침공을 물리쳤다. 고려의 충신이던 그는 이복 동생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반대했으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려는 뜻을 알고 절명시를 남긴 뒤 음독자결하였다. 생전의 작위는 척산군(陟山君)과 완산군(完山君)으로, 고려말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시킨 공로로 척산군에 봉군되었고, 뒤에 다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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