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대군, 이방우, 술을 마시고 병이 나서 졸하다.
진안대군(鎭安大君, 1354년 ~ 1394년 1월 15일(1393년 음력 12월 13일))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며, 조선 초기의 왕족, 시인이다. 이름은 이방우(李芳雨)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사호(祠號)는 청덕(淸德), 시호(諡號)는 경효(敬孝)·정의(靖懿)이다.
생애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안변 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고려 말에 과거(문과)에 급제하여 예의판서(禮儀判書)와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고려 우왕 14년(1388년)에 부친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처자를 데리고 교주강릉도 철원 보개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도 국가 일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고 서해도 해주로 옮겨 가서 서너달 살다가, 아버지 태조 이성계로부터 동북면 고원 땅 전사(田舍)를 하사받은 후에는 고향인 동북면 함흥으로 다시 옮겨 간 후 1년 여 만에 사망하였다.
조선 태조 1년(1392년)에 여러 왕자를 군으로 봉할 때 진안군(鎭安君)에 책봉되었으며, 1년 후인 태조 2년(1393년) 음력 12월 13일 향년 4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졸기에는 술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후 조선 정종 2년(1400년)에 진안대군(鎭安大君)으로 진봉되었고, 조선 태종 18년(1418년)에 진한 정효공(辰韓 定孝公)에 추증되었다.
기록
태조실록 '진안군 이방우의 졸기'에는 ‘진안군은 성질이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술을 마시고 병이 나서 졸하였다.’고 적고 있다.
정조 13년(1789년) 정조가 지은 '진안대군 이방우 묘비문'에는 ‘어려서 태조를 섬길 때 효자로 칭송받았고, 형제 사이에도 우애가 돈독했으며, 점점 자라면서는 시서(詩書)에 마음을 쓰고 검약을 실천하면서 부귀영화 따위에는 마음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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