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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러일전쟁, 러시아 제국은 정부의 무능을 드러낸 패전의 영향으로 2월 혁명을 겪다. 러일전쟁, 러시아 제국은 정부의 무능을 드러낸 패전의 영향으로 2월 혁명을 겪다. 러일 전쟁(러시아어: Русско-японская война, 일본어: 日露戦争 (にちろせんそう), 영어: Russo-Japanese War)은 1904년 2월 8일에 발발하여 1905년 가을까지 계속된 전쟁으로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무력 충돌이었다. 러일 전쟁의 주요 무대는 만주 남부, 특히 요동 반도와 한반도 근해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제국이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부동항으로, 여름에 주로 이용되었으며 여순 항(당시는 Port Arthur)은 연중 사용할 수 있었다. 청일 전쟁 이후인 1903년 8월에 진행되기 시작한 차르 정부와 일본 간 협상에서 일본은 만주에서 러시아의 주.. 더보기
이상설, 1907년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어 활동하다. 이상설, 1907년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어 활동하다. 이상설(李相卨, 1871년 1월 27일(1870년 음력 12월 7일) ~ 1917년 양력 3월 2일)은 조선(대한제국)의 문신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 혹은 부재라고도 읽음)이다. 본관은 경주이다. 1907년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어 활동하였고, 이후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이바지하였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911년 권업회 창설과 1914년 러일전쟁 10주년 기념일을 기하여 대한광복군정부 수립을 주관하여 정통령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생애 1870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이행우(行雨)였으나, 1876년 이용우(龍雨)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관직 생활 1894년 .. 더보기
한일병합조약, 한일합방조약,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강제 편입되다. 한일병합조약, 한일합방조약,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강제 편입되다. 한일 병합 조약(한국 한자: 韓日倂合條約) 또는 한일 병합에 관한 조약(일본어: 韓国併合ニ関スル条約 (かんこくへいごうにかんするじょうやく) 칸코쿠헤이고니칸스루조야쿠)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일방적인 위력에 의해 이루어진 합병조약(合倂條約)이다. 한일 합방 조약(한국 한자: 韓日合邦条約)이라고도 불린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국권피탈(한국 한자: 國權被奪), 경술국치(한국 한자: 庚戌國恥) 등으로 호칭.. 더보기
독도, 1905년의 일본의 독도 편입은 유효한가?(2) 독도, 1905년의 일본의 독도 편입은 유효한가? 1905년 1월 28일, 일본 정부에 의해 실시된 독도의 시마네 현 편입이 법적으로 유효한가 아닌가가 문제화되어 있다. 대한민국 측은 독도의 시마네 현 편입이 법적으로 불충분한 부분이 있어, 비밀리에 이루어졌던 것이므로, 비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에 대하여 일본 측은 '국제법에 의한 적법한 수속이 이루어졌고, 또한 신문 등에도 보도되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는 지적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다. 더구나, 판례에 비추어 보면 '비밀리에 실효지배를 할 수는 없다'고 되어 있어, 특정 편입 수속이 아니라, 그 실효성이 쟁점이 고 있다. 실효성 이외에 통지 수속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팔마, 그린란드의 판례에 비추어 볼 때 통지의무없으며, 통지의무를.. 더보기
을사오적, 을사조약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을사오적, 을사조약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을사오적(乙巳五賊)은 1905년 대한제국에서 을사조약의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 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사람을 말한다. 당시 대신 중 수상격인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은 조약에 반대했고, 궁내부대신 이재 극은 조약 체결과 직접 관계가 없었다. 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했던 한규설은 일본의 강압으로 물러가고, 조약에 조인한 외부대신 박제순이 참정대신이 되었다. 이하영은 초기의 반대 의견을 곧 뒤집은 뒤 조약 체결 과정에서 박제순보다 더 맹렬한 활약을 하였으나 처음에 반대한 사실 때문에 을사오적에서는 빠졌다. 을사오적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이후 숱한 암살 위협에.. 더보기
을사조약,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당하다. 을사조약,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당하다. 을사조약(乙巳條約) 또는 제2차 한일협약(第二次韓日協約)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제국 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체결 당시 정식 명칭은 ‘한일협상조약’이며, 을사년에 체결되었기 때문에 을사협약, 을사5조약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는 조약의 내용과 강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의 성격을 들어 을사늑약(乙巳 勒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보통 제2차 일한협약(第二次日韓協約, 일본어: 第二次日韓協約) 또는 을사협약(乙巳協約)이라고 부른다. 1965년에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한일국교를 정상화하는 한일기본조약의 제2조를 통해 이 조약이 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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