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재,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다.
길재,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다. 길재(吉再, 1353년~1419년)는 고려후기의 문신이자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해평,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으로 불린다.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선산에 낙향하여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김숙자, 최운룡, 김종직 등을 통해 사림파로 학맥이 계승되었다. 생애 11세 때 절에 들어가 글을 배우고, 그 뒤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세 때인 1370년(공민왕 19) 박분에게 《논어》, 《맹자》를 배웠으며, 그 뒤 박분과 함께 개경으로 가서 이색, 정몽주, 권근의 제자가 되어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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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립, 선조 때 8대 명문장가로 꼽히며 외교문서의 대가이다.
최립, 선조 때 8대 명문장가로 꼽히며 외교문서의 대가이다. 최립(崔岦, 1539년 ~ 1612년)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인 겸 문신이다. 자는 입지(立之), 호는 간이(簡易)·동고(東皐), 본관은 통천(通川). 율곡 이이 등과 함께 선조 때의 8대 명문장가로 꼽히며, 외교문서의 대가로, 명성은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당색으로는 서인이며,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과 명필로 알려진 석봉 한호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우암 송시열의 아버지 수옹 송갑조는 그의 문인이었다. 율곡 이이의 문인이다. 유년기 1539년(중종34)개성에서 부친인 진사 최자양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의 8대조는 조선초의 명장인 최운해이고, 5대조 최로는 명필로 알려졌고, 절충상호군으로 단종 충신단에 배향된 인물이다. 최립은 붓을 잡을 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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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복,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와 사료 연구, 후학 양성과 집필에 몰두하다.
안정복,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와 사료 연구, 후학 양성과 집필에 몰두하다. 안정복(安鼎福, 1712년 ~ 1791년 7월 20일)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리학자, 작가, 역사가, 수필가이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백순(百順), 호는 순암(順庵)·한산병은(漢山病隱)·우이자(虞夷子)·상헌(橡軒)이다. 성호 이익(李瀷)의 문인으로서 스승의 문하에서 나온 뒤에도 계속 이익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의 지도를 받았다. 《성호사설》을 해석, 일부 수정한 《성호사설유선》을 편찬하였다. 여러가지 지식을 담은 《잡동산이 雜同散異》는 잡동사니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실학자이자 역사가이지만 성리학자이기도 하여 1767년(영조 43년)에는 왕명으로 《주자대전》과 《주자어류》의 어려운 구문을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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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허균의 친누나, 맑스의 <소외론>과 비교되다.
허난설헌, 허균의 친누나, 맑스의 과 비교되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년 ~ 1589년 3월 19일)은 조선 중기의 시인, 작가, 화가,이다. 본명은 초희(楚姬) 로, 다른 이름은 옥혜(玉惠)이다. 호는 난설헌(蘭雪軒), 난설재(蘭雪齋)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이달(李達)에게 시와 학문을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1577년(선조 10년)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의 시 세계를 이룩하였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성 문인의 한사람이며, 300여 수의 시와 기타 산문, 수필 등을 남겼으며 213수 정도가 현재 전한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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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긍정적 평가 신사임당은 봉건 시대의 제약을 받았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자기 개발에 매진했다. 시문과 그림, 글씨는 따를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조선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개척하였다. 신사임당 생전에도 문정왕후나 정난정, 황진이, 장녹수나 한세기 전의 인물인 어우동, 유감동 등과 비교, 대조되어 훌륭한 여 성,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존경받았다. 사후에도 서인의 이론적, 정신적 지주인 이이를 기른 훌륭한 어머니로 존숭되었고, 17세기에는 송시열에 의해 격찬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녀는 어머니와 부녀의 모범으로 양반 사대부가의 여식들에게 훈육되었다. 조선 후기 율곡의 학통을 이은 우암 송시열은 그녀의 시와 글, 서예작, 그림 등 찬사를 보내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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