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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

척준경, "죄는 중하나 또한 공도 적지않다." 척준경, "죄는 중하나 또한 공도 적지않다." 척준경(拓俊京, ? ~ 1144년 음력 2월)은 고려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이며, 황해도 곡주(谷州: 황해북도 곡산군) 출신이다. 1104년(숙종 9)부터 1109년까지 윤관, 오연총, 왕자지 등과 함께 함경도에 침입한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는데 기여하였다. 뛰어난 용맹으로 여진족 정벌에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나, 이자겸(李資謙)과 함께 전횡을 일삼아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곡산 척씨(谷山拓氏) 가문의 시조이며,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척위공(拓謂恭)의 아들이다. 척준경은 인종(仁宗)이 등극한 후 권력을 잡은 이자겸을 돕게 되며, 이유는 명확치 않으나, 이자겸의 다섯째 아들인 이지원(李之元)이 척준경의 사위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 더보기
묘청의 난,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 묘청의 난,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 묘청의 난(1135년 1월 19일(음력 1월 4일) ~ 1136년)은 승려 묘청 등이 금국정벌론과 서경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 산되자 서경(西京)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하여 대위국(大爲 國)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이다. 대위국이라는 새로운 국가이념 차원의 반란은 김부식이 지휘하는 진압군의 공격을 받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1년간 치열하게 지속되었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자인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두고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 이라 했다. 묘청의 난을 가리키는 요즘 이름으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있다. 배경 서경천도론을 처음 내세운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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