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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왕후

인조반정,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을 비판하며 능양군을 옹립하다. 인조반정,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을 비판하며 능양군을 옹립하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은 1623년 4월 11일(음력 3월 12일)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을 몰아내고 능양군 이종을 옹립한 사건을 말한다. 배경 광해군은 당론의 폐해를 통감하고, 이를 초월하여 좋은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등 명망 높은 인사를 조정의 요직에 앉혀 어진 정치를 행하려 했으며,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실리를 취하는 중립외교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이첨, 정인홍 등 대북파의 무고로 친형 임해군을 사사했으며, 1613년(광해군 5년) 계축옥사가 일어나 이복동생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폐비시켜 서궁에 유폐하였다. 이와 같은 광해군의 패륜 행위를 명분삼아 .. 더보기
영창대군, 강화도에서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죽어가다. 영창대군의 묘 영창대군, 강화도에서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죽어가다.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년 4월 12일/음력 3월 6일 ~ 1614년 3월 19일/음력 2월 10일) 조선 제14대 왕 선조와 그의 계비 인목왕후의 아들로 성은 이(李), 이름은 의(㼁), 본관은 전주(全州) 이다. 선조에게는 적자와 서자를 합해 총 1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영창대군은 선조가 55세 때 얻은 유일한 적자이다. 이 때문에 영의정인 소북의 유영경등은 한때 영창대군을 왕세자로 추대하려 했고, 이는 후에 그가 억울하게 처형당하는 원인 이 되었다. 생애 1606년 4월 12일(음력 3월 6일)에 선조와 인목왕후의 유일한 적장자로 태어나 1614년 3월 19일(음력 2월 10일)에 강화 유배지에 서 사망했다. 선조는 .. 더보기
선조,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목릉 선조,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목릉 능의 구성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목릉에는 14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세 사람이 잠들어 있다. 같은 능역 안의 각각 다른 언덕에 왕릉과 왕비릉을 조성한 동원이강릉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제일 왼쪽에 보이는 것이 선조의 능이고, 가운데가 의인왕후, 오른쪽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선조의 능에는 3면의 곡장이 둘러져 있고, 병풍석에는 십이지신상과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여기에 난간석과 혼유석, 망주석 1쌍과 석양, 석호 2쌍이 배치되어 전형적인 상설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의인왕후릉은 병풍석이 생략된 채 난간석만 둘러져 있다. 임진왜란을 치른 후 능을 조성했기 때문에 석물들의 크기만 클 뿐 사실적이지도 입체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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