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정미사화

윤원형, 사후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나 1907년 이완용의 건의로 사면 복권되다. 윤원형, 사후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나 1907년 이완용의 건의로 사면 복권되다. 윤원형(尹元衡, 1509년 ∼ 1565년 11월 18일)은 조선 중기의 외척이자 문신으로, 파산부원군 윤지임과 전성부대부인 전의 이씨(全城府夫人 全義李氏)의 넷째 아들이자 문정왕후의 남동생이며, 윤원량 · 윤원로의 동생이며 소윤(小尹)의 영수이다. 명종의 외숙으로 윤임, 김안로, 이량, 심통원 등과 함께 인척세력의 대표적 인물이며 을사사화를 날조했다. 정난정은 그의 첩이었다. 본관은 파평(波平). 자는 언평(彦平)이다. 1533년(중종 28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으로 관직에 올랐으며 외조카인 경원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노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친족인 윤임, 처당숙 김안로(金安老) 등과 갈등했다. 김안로의 공격으로 유배되었.. 더보기
양재역 벽서 사건, 윤임의 잔존 세력을 숙청하다. 양재역 벽서 사건, 윤임의 잔존 세력을 숙청하다. 양재역 벽서 사건이란 경기도 양재역의 벽면에 이런 내용의 벽서가 나붙었던 사건을 말한다. "위로는 여왕(문정왕후), 아래로는 간신이 날뛰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다." 윤원형은 이 벽서 사건이 윤임 잔당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조정에 남은 윤임의 잔존 세력을 모두 숙청했다. 윤원형이 윤임의 잔존 세력에 사림을 포함시킴으로써 갓 조정에 진출했던 사림은 또다시 커다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양재역 벽서 사건을 계기로 을사사화를 피한 사림이 대다수 끌려와 형문을 당하고 유배, 파면당했다.(정미사화) 이 과정에서 사림파의 희생을 막으려는 이언적 등과 갈등, 이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언적을 정계에서 축출한다. 이어 윤원형은 1546년(명종 1년) 1월 자헌대부로 승진한 ..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