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리, 한글 창제를 반대한 대표적 인물로 세종의 노여움을 사다.
최만리, 한글 창제를 반대한 대표적 인물로 세종의 노여움을 사다. 최만리(崔萬理, ? ~ 1445년 10월 23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정치인, 유학자이자 철학자, 법학자이다. 본관은 해주, 자(字)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이다. 해주 최씨의 시조인 해동공자 최충(崔沖)의 12대 후손이고, 최자(崔滋)의 6대손이며 최하(崔荷)의 아들이다. 외할아버지는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지용수(池龍壽)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뒤 1419년(세종 1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홍문관과 집현전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1427년에는 다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였다. 그 뒤 집현전 부제학,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청백리로 녹선되었으나, 세종대왕이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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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다.
길재,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다. 길재(吉再, 1353년~1419년)는 고려후기의 문신이자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해평,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으로 불린다.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선산에 낙향하여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김숙자, 최운룡, 김종직 등을 통해 사림파로 학맥이 계승되었다. 생애 11세 때 절에 들어가 글을 배우고, 그 뒤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세 때인 1370년(공민왕 19) 박분에게 《논어》, 《맹자》를 배웠으며, 그 뒤 박분과 함께 개경으로 가서 이색, 정몽주, 권근의 제자가 되어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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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1)
세종,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 세종(世宗, 1397년 5월 7일(음력 4월 10일) ~ 1450년 3월 30일 (음력 2월 17일),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성(姓)은 이(李), 휘(諱)는 도(祹),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자(字)는 원정(元正)이다. 사후 묘호(廟號)는 세종(世宗), 시호(諡號)는 장헌대왕(莊憲大王)으로, 정식 시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태종(太宗)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셋째 아들이며, 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이다. 한성 준수방(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고을에서 아버지 정안군 이방원(靖安君 李芳遠)과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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