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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

연산군, 사림파의 간쟁을 무시하고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연산군, 사림파의 간쟁을 무시하고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연산군(燕山君, 1476년 11월 23일 (음력 11월 7일) ~ 1506년 11월 20일 (음력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왕이다. 성은 이(李), 휘는 융(㦕: 忄+隆), 본관은 전주(全州). 성종의 장자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았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王妃)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충돌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사림파와 양대 .. 더보기
박원종, 왕실과의 겹사돈, 중종을 옹립하는데 주동적 역할을 하다. 박원종, 왕실과의 겹사돈, 중종을 옹립하는데 주동적 역할을 하다. 박원종(朴元宗, 1467년 ~ 1510년)은 조선 전기의 무신(武臣) 겸 정치가(政治家)로 자는 백윤, 시호는 무열로 본관은 순천이다. 월산대군과 제안대군의 처남이자 윤임과 장경왕후의 외숙부이기도 하다. 승평부부인이 자결하자 연산군에게 앙심을 품고 정변을 준비, 유순정, 성희안 등을 포섭하여 1506년 중종반정을 기획한다. 중종반정 직후인 1506년 9월부터 이듬해 1507년 8월까지 중종 임금을 보좌하여 섭정을 맡았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일족이기도 하다. 왕실과의 겹사돈 판서 박중선의 아들로 부지돈녕부사 박거소(朴去疎)의 손자이다. 증조부 평양군 박석명(朴錫命)은 좌정승 박가흥의 큰아들이자 고려 공양왕의 조카사위로 대사헌을 지.. 더보기
중종, 왕권을 신권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다. 중종, 왕권을 신권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다. 중종(中宗, 1488년 4월 16일 (음력 3월 5일) ~ 1544년 11월 29일 (음력 11월 15일), 재위: 1506년~1544년)은 조선의 제11대 왕이다. 휘는 역(懌), 본관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 자는 낙천(樂天)이며, 사후 시호는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中宗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이다. 묘호는 중종(中宗)으로 결정되었는데 연산군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여 중흥시켰다는 의미로 정해진 것이다. 반대로 38년의 재위기간 중에 뚜렷한 치적을 남기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그저 가운데 중(中)자를 썼다는 해석도 있다. 인종은 '종'(宗) 자로는 부족하다 하여 중조(中祖)를 제안했는데, 중종을 연산군 대신 잇는 왕으로써 '조'(祖)를 붙이는 것은.. 더보기
장녹수, 연산군의 총애를 받다 중종반정 이후 참형을 당하다. 장녹수, 연산군의 총애를 받다 중종반정 이후 참형을 당하다. 숙용 장씨(淑容 張氏, 1472년? ~ 1506년)는 조선 연산군의 후궁이다. 소생으로는 연산군과의 사이에 딸 영수(寧壽)가 있다. 본명은 장녹수(張綠水)로 아버지는 충청도 문의 현령(文義縣令)을 지낸 장한필이고 어머니는 천민 출신의 첩이었다. 이 때문에 녹수는 성종의 종제인 제안대군의 노비로 살았다. 제안대군의 가노(家奴)와 결혼해 아들을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 기생이 되었다. 얼굴은 보통을 넘지 못했으나 매우 동안(童顔)이었고, 특히 노래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연산군은 이를 듣고 녹수를 입궐시켜 숙원(淑媛)에 봉하고 많은 재물을 집으로 보내주고 노비와 전답, 가옥을 내렸다. 또한 그녀의 청으로 장녹수의 주인이었던 제안대군의 장인 김수.. 더보기
연산군,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다. 연산군,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다. 연산군(燕山君, 1476년 11월 23일 (음력 11월 7일) ~ 1506년 11월 20일 (음력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융(㦕), 본관은 전주(全州) .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았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충돌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사림파와 양대 파벌을 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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