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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모수

해부루왕, 해모수왕의 아들이며 금와왕의 아버지이다. 해부루왕, 해모수왕의 아들이며 금와왕의 아버지이다. 해부루(解夫婁, ? ~기원전 60년경는 부여의 국왕으로 해모수왕의 아들이며, 금와왕의 아버지이다. 생애 해모수의 아들로 부여의 왕위를 계승한 해부루는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천제(天帝)의 계시를 받아 도읍을 옮길 것을 청하자, 그에 따라 동쪽 바닷가의 가섭원(迦葉原)이라는 곳으로 나라를 옮겨 이를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가 옮겨간 뒤에 원래 도읍지에는 동명제(東明帝)가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 이 있으며, 다른 전승에 따르면, 해부루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없고, 옮겨간 뒤에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부여는 해부루대에 동해의 바닷가에 있는 ‘가섭원(迦葉原)’으로 천도를 하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 더보기
유화부인, 고구려 동명성왕의 어머니, 압록강가에서 해모수를 만나다. 유화부인, 고구려 동명성왕의 어머니, 압록강가에서 해모수를 만나다. 유화부인(柳花夫人, ? ~ 기원전 24년 음력 8월)은 고구려 동명성왕의 어머니이다. 여동생들과 함께 압록강가에서 놀다가 북부여 왕 해모수의 꾐에 빠져서 그를 가까이 하자, 아버지 하백에 의해 태백산 우발수로 쫓겨나서 동부여(東夫餘)의 금와왕(金蛙王)을 따라 궁으로 들어갔다. 그 후 해모수와의 관계를 알게 된 금와가 방에 가뒀는데, 이때 알을 하나 낳았다. 왕이 그 알을 개와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고 길에 버려도 소와 말이 피하고 들에 버려도 새와 짐승이 덮어주었다. 다시 유화(柳花)에게 돌려주어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이 아이가 고구려(高句麗)의 시조 주몽(朱蒙)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 더보기
동명성왕, 추모왕, 주몽 고구려를 건국하다. 동명성왕, 추모왕, 주몽 고구려를 건국하다. 동명성왕(東明聖王) 또는 추모왕(鄒牟王, 기원전 58년 ~ 기원전 19년 음력 9월)은 고구려의 개국 시조이다. 재위: 기원전 37년 ~ 기원전 19년)이다. 《국사》(國史) 고구려본기를 인용한 《삼국유사》 및 《삼국사기》에는 본래이 성은 해(解)였다가 건국후 고(高)로 고쳤다, 휘가 주몽(朱蒙)이라 하였다. 또한, 《삼국사기》 등에는 추모(鄒牟)·중모(中牟)·중해(衆解)·상해(象解)·도모(都牟)·도모(都慕)라는 이름도 전하고 있다. 부여의 건국자인 동명과 주몽은 별개 인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여의 금와왕 재위 시 금와왕의 아들 대소에 의해 핍박받던 주몽은 박해를 피해 남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탄생 설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및 《동명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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