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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완옹주

정조, 수은에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독살설이 제기되다. 정조, 수은에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독살설이 제기되다. 홍국영의 득세와 몰락 1777년(정조 1년) 7월, 괴한이 경희궁에 침입하자 정조는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8월에 다시 괴한이 침입하다 잡혔는데 조사 결과 정조의 외척인 홍상범, 홍계능 등이 유배되어 있던 홍술해와 모의하여 반정을 꾀한 것이 들어났다. 홍국영이 이 사건을 책임지고 처리하였다. 홍국영은 이들이 추대한 은전군을 자진하도록 조치하고 해, 홍상범에게는 사형을 내렸으며, 홍계능은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정후겸의 양모인 화완옹주는 교동으로 유배되었다. 이렇게 하여 정조 즉위 1년 안에 즉위에 반대하였던 세력은 정순왕후의 오라비인 김귀주만이 무사하였을 뿐 모두 제거 되었다. 이후 정조는 홍국영을 특별히 발탁하여 동부승지로 삼았다가.. 더보기
화완옹주, 사도세자의 친동생, 영조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다. 화완옹주, 사도세자의 친동생, 영조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다. 화완옹주(和緩翁主, 1738년 3월 9일 (음력 1월 19일) ~ 1808년)는 조선 제 21대 임금 영조와 영빈 이씨의 딸이다. 사도세자의 친동생이자 조선 제 22대 임금 정조의 고모이기도 하다. 정후겸은 그녀의 양자이다. 1749년(영조 25) 7월 6일 소론의 거두 정휘량의 조카이자 이조 판서 정우량(鄭羽良)의 아들 정치달에게 하가하였다. 정치달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으나 일찍 죽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자 시댁 일가의 아들인 정후겸을 데려다가 양자로 삼았다. 정조 즉위 후 양자 정후겸과 함께 이른바 "《명의록》의 의리"에 반한 죄인으로 취급되어 몰락하였다. 양자 정후겸은 사사당하고 그는 옹주의 호를 삭탈당해 '정치달의 처(정처)'라고 .. 더보기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사도세자의 비행을 영조에게 고하다.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사도세자의 비행을 영조에게 고하다. 영빈 이씨(暎嬪 李氏, 1696년 8월 15일(음력 7월 18일) ~ 1764년 8월 23일(음력 7월 26일))는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의 총관후궁이다. 본관은 전의(全義)로, 증찬성 이유번(李楡蕃)과 부인 한양김씨(김우종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보통 그의 처소를 선희궁(宣禧宮)이라 부른다. 사도세자의 어머니이자 정조의 친할머니이다. 영조와의 사이에서 1남 6녀를 두었다. 첫 시호는 의열(義烈)로 이후 의열궁(義烈宮)으로 불렸다가 다시 소유(昭裕)로 시호가 바뀌었다. 1701년에 궁녀로 입궁하였다. 1726년 11월 16일 영조의 승은을 입어 내명부 종2품 숙의(淑儀)에 책봉되었다. 1728년에 내명부 종1품 귀인(貴人)이 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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