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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 단종복위운동 동참을 거절하다. 신숙주, 단종복위운동 동참을 거절하다. 사육신의 난과 단종복위운동 신숙주는 성삼문에게 사육신으로부터 세조 3부자 처형 거사에 동참할 것을 요청받았으나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신숙주는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이 명분상으로는 옳지만, 인력과 장비 부족으로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명회나 권람 등에게는 이 사실을 고변하지 않았는데, 뒤에 김질이 자신의 장인 정창손의 설득으로 거사를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사육신의 거사를 밀고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시습 등은 그를 추한 배신자와 변절자로 규탄하였고, 사림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아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로써 사육신과는 결별을 결심했다. "자네와는 모시기로 한 주군이 달라져서 이제 가는 길도 어긋났지.. 더보기
성종, 조선의 태평성대와 그 이면, 평가와 비판 성종, 백성들은 건국 이후 가장 태평성대한 세월을 맞이하다. 즉위 이후 수렴 청정 기간 반발세력을 무마하고자 왕위계승권에서 밀려난 월산대군과 제안대군을 군에서 대군으로 책봉하고 이들을 좌리공신에 임명하였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즉위 초반에는 할머니인 자성대왕대비 윤씨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당시 유력한 국왕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한명회와 정희왕후의 뜻에 따라 왕위에 올랐던 만큼 섭정을 받은 7년 동안 국정의 모든 결정권은 신숙주, 한명회 등의 원로대신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수렴청정을 끝낸 1476년(성종 7년)부터는 원로대신들이 국정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원상 제도를 폐지하여 결재권을 되찾았다. 친정을 시작한 이후 그는 할아버지 세조가 권신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길재-김숙자 등의.. 더보기
이익, 성호사설, 신분제 타파와 이혼 옹호론을 펼치다. 이익, 성호사설, 신분제 타파와 이혼 옹호론을 펼치다. 여성 교육에 대한 비판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거치면서 여자의 권리 상승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했다. 특히 일부 사대부가와 중인층에서 딸에게 글공부를 가르치는 것을 잘못이라 생각하였다. 여자들에게도 글공부와 학문을 가르치는 조선 후기의 풍조를 그는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여자는 열심히 일하고 검소해야 하며,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지켜야 한다. 고 했다. 독서나 강의는 남자가 할 일이지 여자가 할 일이 아니다. 여자들은 아침상을 준비하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장면하고 길쌈도 해야 하는데 언제 책을 읽을 시간이 있겠는가? 그리고 학식이 있다 하는 부인들을 보면 배운 것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쁜.. 더보기
김안로, 시비걸기를 좋아하여 여러차례 옥사를 일으키다 김안로, 시비걸기를 좋아하여 여러차례 옥사를 일으키다. 김안로(金安老, 1481년 ~ 1537년 10월 27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외척이다. 자는 이숙(頤叔), 호는 희락당(希樂堂), 용천(龍泉), 퇴재(退齋),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김전의 형 김흔의 셋째 아들이다. 김제남의 종증조부이다. 중종의 딸 효혜공주(孝惠公主)의 남편인 연성위(延城尉) 김희(金禧)는 그의 아들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홍문관과 사간원 등의 요직을 거쳐 대사간을 지냈다. 언관으로 있으면서 여러 시정의 폐단을 해소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시비걸기 좋아하는 인물로 몰리기도 했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와 함께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희가 중종의 장녀 효혜공.. 더보기
계엄령, 대한민국의 계엄령, 다른 나라들의 계엄령 계엄령, 대한민국의 계엄령, 다른 나라들의 계엄령 계엄(戒嚴, Martial law)은 전시 또는 사변 등 비상 사태에 있어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또는 일부 군사령관이 행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계엄령 계엄령(戒嚴令)은 내란, 반란, 전쟁, 폭동, 국가적 재난 등 비상 사태로 인해 국가의 일상적인 치안 유지와 사법권 유지가 불가하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과 같은 국가 원수 또는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의 동의 아래 군대를 동원하여 치안 및 사법권을 유지하는 조치이다. 계엄령이 선포된 지역에서는 계엄사령부가 행정사무 및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계엄령을 인정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계엄령이 초비상 사태에 대한 일시적인 조치로 규정하고 있으나 독재 정권이 반대자를 탄압하는 데 이용하거나 정통성을 부여받지 .. 더보기
남곤,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 사림으로 부터 변절자로 몰리다. 남곤,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 사림으로 부터 변절자로 몰리다. 남곤(南袞, 1471년 ~ 1527년 3월 10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유학자이며 정치인,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초기 사림파 정치인이었으며 성리학의 지식에 해박하였으며, 사장학과 경서 해석에도 재주가 있었다. 자(字)는 사화(士華), 호는 지정(止亭)·지족당(知足堂)·지족(知足),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사림파 출신 인사 중 김전 등과 함께 심정·홍경주 등이 기묘사화를 일으키는 것을 묵인, 동조하였다. 1494년(성종 2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부제학, 이조참판, 사헌부대사헌,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 의정부좌찬성과 우찬성, 예조판서를 거쳐 기묘사화 이후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승진하여 의정부좌의.. 더보기
유순정, 중종반정의 일등 공신, 동문 선후배들로부터 외면당하다. 유순정, 중종반정의 일등 공신, 동문 선후배들로부터 외면당하다. 유순정 (柳順汀, 1459년 ~ 1512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 성리학자이자 사림파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1506년의 중종 반정에 참여하였다. 사림파출신으로 처음 공신에 책록된 정치인이었다. 과거 급제 후 연산군 때 홍문관과 삼사의 요직을 거쳐 참판, 이조판서 등을 지냈으나 1506년의 중종 반정에 가담하여 일등공신이 되었다. 관직은 의정부영의정에 이르렀고 청천부원군에 이르렀지만 동문 선후배들로부터 외면당하였다. 자는 지옹(智翁), 시호는 무안과 문성, 본관은 진주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다. 생애 초반 목사를 지낸 목사 양(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뒤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암기에 능했고 학업을 닦고 활을 잘 쏘아서 무인 .. 더보기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尹任, 1487년 ~ 1545년 8월 30일)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인척. 자는 임지(任之), 본관은 파평이다. 영돈녕부사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윤여필의 아들이자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의 오빠로,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중종을 옹립하는데 기여하였다. 1512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이르렀다. 누이 장경왕후 사후에 자신의 집안인 파평 윤씨에서 문정왕후를 새 왕비로 추천하였는데, 이후 윤원형 일가와는 앙숙이 됐다. 이후 대윤(大尹)의 거두로 윤원형, 윤원로 등 소윤(小尹) 일파와 대립하였다. 윤임은 인종의 외삼촌이었고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이었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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