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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수은에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독살설이 제기되다. 정조, 수은에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독살설이 제기되다. 홍국영의 득세와 몰락 1777년(정조 1년) 7월, 괴한이 경희궁에 침입하자 정조는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8월에 다시 괴한이 침입하다 잡혔는데 조사 결과 정조의 외척인 홍상범, 홍계능 등이 유배되어 있던 홍술해와 모의하여 반정을 꾀한 것이 들어났다. 홍국영이 이 사건을 책임지고 처리하였다. 홍국영은 이들이 추대한 은전군을 자진하도록 조치하고 해, 홍상범에게는 사형을 내렸으며, 홍계능은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정후겸의 양모인 화완옹주는 교동으로 유배되었다. 이렇게 하여 정조 즉위 1년 안에 즉위에 반대하였던 세력은 정순왕후의 오라비인 김귀주만이 무사하였을 뿐 모두 제거 되었다. 이후 정조는 홍국영을 특별히 발탁하여 동부승지로 삼았다가.. 더보기
정조, 왕권강화와 정치개혁을 위한 노력을 하다. 정조, 왕권강화와 정치개혁을 위한 노력을 하다. 정조는 홍국영의 실각 후 탕평책을 바탕으로 직접 정치를 이끌었다. 그러나 집권 초기 반대파에 둘러쌓여 있던 정조에게는 친위세력이 없었다. 정조는 자신의 뜻에 따를 문신을 육성하기 위하여 규장각을 설치하는 한편 군영을 개혁하여 국왕의 병권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규장각 정조는 즉위 후 창덕궁 후원에 영조의 글, 어진, 유품 등을 모아 보관할 건물을 짓고 규장각이라고 하였다. 규장(奎章)은 28수의 규성(奎星)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규성은 문장(文章)을 관할한다고 여겨져 왔다. 규장각은 선대 왕의 유품을 보관하는 왕실박물관이자 왕실도서관으로서 중국의 사신이 가져온 선물도 이곳에 보관하였다. 세조와 숙종도 규장각을 설치한 적이 있다. 규장각에는 두 명의 제학(提.. 더보기
진안대군, 이방우, 술을 마시고 병이 나서 졸하다. 진안대군, 이방우, 술을 마시고 병이 나서 졸하다. 진안대군(鎭安大君, 1354년 ~ 1394년 1월 15일(1393년 음력 12월 13일))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며, 조선 초기의 왕족, 시인이다. 이름은 이방우(李芳雨)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사호(祠號)는 청덕(淸德), 시호(諡號)는 경효(敬孝)·정의(靖懿)이다. 생애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안변 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고려 말에 과거(문과)에 급제하여 예의판서(禮儀判書)와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고려 우왕 14년(1388년)에 부친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처자를 데리고 교주강릉도 철원 보개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도 국가 일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고 서해도 해주로 옮겨 가서 서너달 살다가,.. 더보기
영조, 세손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이유 영조, 세손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이유 탕평책 실패 노론과 소론의 대립 구도는 끝내 1762년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사도세자는 경종비 선의왕후가 만년을 보내던 저승전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이들을 통해 경종독살설을 접하고 노론에게 반감을 갖게 된다. 영조의 원비이자 사도세자를 양자로 입양한 정성왕후 서씨가 죽고 맞이한 김한구의 딸 정순왕후 김씨와 후궁 숙의 문씨 역시 사람을 심어 사도세자의 행적을 영조에게 고해바치며 양자 사이를 이간질했다. 김상로, 홍계희, 김한구 등은 세자가 그릇된 정치관을 갖고 있다고 영조에게 고하였고, 영조에게 경종 독살설의 진실을 묻게 된다. 또한 세자는 대리청정 기간 중 이인좌의 난 이후 꾸준히 요구된 소론계 인사들에 대한 연좌제, 처벌을 반대하고 소론.. 더보기
광해군, 영창대군 살해와 인목대비 폐위로 반정의 명분을 제공하다. 광해군, 영창대군 살해와 인목대비 폐위로 반정의 명분을 제공하다. 민생과 문화 임금이 된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안으로는 왕권을 강화하면서 전후 복구 사업을 시행하였으며, 밖으로는 실리적인 외교를 펼쳤다. 1608년 선혜청을 두어 경기도에 대동법을 시행하고, 1611년 양전 사업을 벌였다. 이어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경희궁, 창경궁을 재건하고 인경궁을 건설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서적 간행에도 힘써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비어천가》 ,《동국신속삼강행실》 등을 다시 간행했다. 허균의 《홍길동전》, 허준의 《동의보감》 등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군사와 외교 광해군은 파주 교하가 군사적으로 방어에 유용할 뿐 아니라 중국 대륙과의 해상 교역이 가능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더보기
정종,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상왕으로 물러나다. 정종,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상왕으로 물러나다. 정종(定宗, 1357년 7월 18일 (음력 7월 1일) ~ 1419년 10월 15일 (음력 9월 26일), 재위: 1398년 ~ 1400년)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의 제2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초명은 방과(芳果), 휘는 경(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원(光遠)이다. 1398년부터 140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아우인 정안군(훗날 태종)이 왕세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 선양한 뒤에는 아우 태종이 인문공예 상왕(仁文恭睿 上王)으로 존호(尊號)를 올렸고, 사후 조선 중후기까지 시호인 공정대왕(恭靖大王)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정식으로 묘호와 시호를 올려 정종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定宗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이다. 생애 정종은 공민왕 6년(.. 더보기
신의왕후, 태조의 아내, 향처로 전락하여 자식들과 여생을 보내다. 신의왕후, 태조의 아내, 향처로 전락하여 자식들과 여생을 보내다.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10월 21일(음력 9월 23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첫 아내로 정종과 태종의 생모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에 지병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안천부원군 한경(安川府院君 韓卿)과 삼한국대부인 신씨(三韓國大夫人 申氏)의 딸로 본관은 안변(安邊)이다. 태조 2년(1393년)에 절비(節妃)로 추증되었다가 1398년 그녀의 소생들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태조가 하야하고 그녀의 둘째 아들인 정종이 즉위하여 비로소 왕후로 승격되었다. 시호는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이며,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더보기
효령대군, 숭유억불정책으로 부터 불교를 옹호하다. 효령대군, 숭유억불정책으로 부터 불교를 옹호하다.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년 1월 6일 (음력 1395년 12월 11일) ~ 1486년 6월 12일(음력 5월 11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자, 왕족, 서예가, 정치가이다. 조선의 제3대 국왕 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원경왕후 민씨의 소생이다. 조선 세종대왕의 둘째 형으로 성씨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 이름은 보(補)이다. 초명은 호(祜)였는데 19세에 보(補)로 개명하였다. 자는 선숙(善叔)이고, 호는 연강(蓮江)이며 불교 법명도 연강(蓮江)이고,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세종대왕의 형이자 세조의 백부로 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6..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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