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녹두장군, 민권을 제창한 혁명가요, 사상가
전봉준, 녹두장군, 민권을 제창한 혁명가요, 사상가 전봉준(全琫準, 1854년 ~ 1895년 4월 24일(음력 3월 30일))은 조선의 교육자이자 정치인이며 동학의 종교 지도자였다. 또한 동학 농민 운동 당시의 북접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1890년대 초 한때 흥선대원군 문하의 식객으로도 있었다. 초명은 명숙(明淑), 다른 이름은 영준(永準)이며 호는 해몽(海夢)이다. 별명이었던 녹두장군(綠豆將軍)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키가 작아 붙여진 별명이다. 1894년 1월 고부에서 탐관오리인 고부군수 조병갑을 몰아내고 1차 봉기를 주도하였으나 조정의 회유책으로 해산했다가, 3월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李容泰)가 동학 농민군을 도적으로 규정하여 동비(東匪)라 칭한 뒤, 동학군과 협력자를 처벌, 처형하고 관련없는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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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추사체, 개화사상가이며 고증학에 뜻을 두다.(1)
김정희, 추사체, 개화사상가이며 고증학에 뜻을 두다.(1) 김정희(金正喜, 정조 10년(1786년) 6월 3일(1786년 6월 28일) ~ 철종 7년(1856년) 10월 10일(1856년 11월 7일)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농장인(農丈人)·보담재(寶覃齋)·담연재(覃硏齋)·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등이다. 노론 북학파 실학자이면서 화가, 서예가였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만든 추사체가 있다. 그는 또한 난초를 잘 그렸다. 1809년(순조 9) 생원이 되고, 1819년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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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하고 통찰했던 선각자
박제가,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하고 통찰했던 선각자 박제가(朴齊家, 1750년 11월 5일 ~ 1815년 4월 25일)은 조선 후기의 정치가, 외교관, 통역관, 실학자로 북학파의 거두이다. 자는 재선(在先), 차수(次修), 수기(修其), 호는 초정(楚亭), 정유(貞否) 또는 정유(貞蕤), 위항도인(葦杭道人)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청나라의 선진 문물 수용과 중상주의 경제 정책을 주장했다. 박제가 1778년 청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는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79년 3월 정조에 의해 규장각검서관으로 특채되어 이후 청나라에 사신이 파견될 때 사신의 수행원으로 다녀왔다. 그 뒤 전설서 별제와 1791년 임시 군기시정, 1792년 군기시정 등을 거쳐 1794년(정조 27년) 2월 춘당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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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 [발해고], 민족의 주체의식과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있다.
유득공, [발해고], 민족의 주체의식과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있다. 유득공(柳得恭, 류득공, 1748년 12월 24일(음력 11월 5일) ~ 1807년 10월 1일(음력 9월 1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 문신, 시인이며 조선 정조 당시의 실학자, 시인이다.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혜보(惠甫)·혜풍(惠風), 호는 영재(泠齋), 영암(泠菴), 가상루(歌商樓), 고운거사 (古芸居士), 고 운당(古芸堂), 은휘당(恩暉堂)이다. 유득공 필적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가 되었으며 포천, 제천, 양근 등의 군수를 거쳐 풍천 부사에 이르렀다. 규장각 검서 당시 다양한 서적을 읽으면서 신라사 위주의 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고, 이후 발해고와 사군지 등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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