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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수양대군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 태종과의 비교 세조, 수양대군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 태종과의 비교 세조(世祖, 1417년 11월 2일 (음력 9월 24일) ~ 1468년 9월 23일 (음력 9월 8일), 재위 1455년~1468년)는 조선의 제7대 임금, 시인이다. 조선왕조에서 최초로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즉위한 임금이자, 최초로 반정을 일으켜 즉위한 군주이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둘째 아들로서, 문종의 동복동생이자 안평대군 용, 금성대군 유의 친형이며 단종의 숙부이기도 하다. 즉위전 호칭은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초봉은 진평대군(晉平大君)이었으나 여러차례 개봉된 끝에 수양대군이 되었다. 조선왕조에서 최초로 반정(反正)을 일으켜 집권한 지도자로,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겨 했고, 역대병요 등을 편찬할 때 만난 권람 등을 통해 한명회를 소.. 더보기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 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 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영조의 차남 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이다. 봉수당에서의 회갑연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이었으나 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 ​(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로도 알려져 있다. 흔히 경의왕후(敬懿王后)라 하지만 죽은 후 받은 시호가 헌경이었고 의(懿) 자는 황후로 추존된 후 받은 제호(帝號)로 이는 잘못된 표기이다. .. 더보기
김시민, 3800명의 군대로 진주성을 지켜내다. 김시민, 3800명의 군대로 진주성을 지켜내다. 김시민(金時敏, 1554년 ~ 1592년 11월 21일 (음력 10월 18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구)안동, 자는 면오 (勉吾),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고려때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의 13대손이자 지평(持平) 김충갑(金忠甲)의 셋째 아들이다. 김시민 장군의 동상 생애 1578년(선조 11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으며, 1581년 부평부사가 되었으나, 경기어사의 서찰로 구황에 전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83년 여진족 이탕개가 회령(會寧) 지방에서 소란을 일으키자 정언신의 부장으로 출정하여 토벌하였다. 그 공으로 훈련원 판관(判官)이 되었다. 이때 그는 군대 개혁 및 강화에 대한 건의를 병조에 제출하였으.. 더보기
사도세자, 장조인 사도세자가 죽게 된 이유는 당쟁 때문이었나? 사도세자, 장조인 사도세자가 죽게 된 이유는 당쟁 때문이었나? 장조(莊祖, 1735년 2월 13일(음력 1월 21일) ~ 1762년 7월 12일(음력 윤 5월 21일))는 조선의 왕세자이자 추존왕이다. 영조의 둘째 서자로, 효장세자의 이복 동생이며 정조의 생부이다. 흔히 사도세자(思悼世子) 또는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은 이(李), 이름은 선(愃),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영조의 둘째 아들로 생후 1년만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749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나 노론, 부왕과의 마찰과 정치적 갈등을 빚다가 1762년(영조 38년) 왕명으로 뒤주에 갇혀 아사하였다. 사후 지위만 복권되었고, 양주배봉산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수원 화성 근처 현.. 더보기
영조, 노론과 소론의 당론 조제와 탕평책을 실시,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다. 영조, 노론과 소론의 당론 조제와 탕평책을 실시,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다. 영조(英祖, 1694년 10월 31일 (음력 9월 13일) ~ 1776년 4월 22일 (음력 3월 5일) )는 조선의 제21대 임금 (재위, 1724년 10월 16일 ~ 1776년 4월 22일)이다.성은 이(李), 휘는 금(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숙 (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숙종의 서장자(차남)로 숙종 생존 시부터 잠재적인 계승권자였으며, 경종 때 왕세제로 책봉된다. 그러나 신임사화 등으로 위기를 넘기다가 경종의 급서로 즉위한다. 영조의 21살때의 모습 이후 노론과 소론의 당론 조제와 탕평책, 악형 폐지, 서적 간행 등을 추진하였으나, 탕평론은 실패했고 둘째 아들 사도세자를 사형시키게 된다. 숙종(肅宗).. 더보기
경신환국, 삼복의 변,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하다. 경신환국, 삼복의 변,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하다. 경신환국(庚申換局)은 1680년(숙종 6년)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한 일이다. 경신사화(庚申士禍), 경신출척 ​(庚申黜陟)이라고도 한다. 개요 1674년(현종 15년)의 복상 문제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남인은 전횡이 심하였고, 숙종으로부터도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의 영의정 허적(許積)의 유악(油幄, 비가 새지 않도록 기름을 칠한 천막) 사건은 왕으로 하여금 더욱 남인을 꺼리게 하였다. 허견의 아버지 허적 유악 사건이란, 허적의 조부 허잠의 시호를 맞이하는 잔치를 연 날에 숙종의 허락도 없이 군사 용품인 유악을 빌려가자, ​숙종이 분노하여 군권을 남인에서 서인으로 대거 교체한 것이다.(허견의 옥사) 허적의 .. 더보기
정조,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正祖, 1752년 10월28일 (음력 9월 22일) ~ 1800년 8월 18일 (음력 6월 28일))는 조선의 제22대 임금이다. 성과 휘는 이산(李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정조 11세 때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은 이후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요절한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통을 계승하였다. 1775년부터 1776년까지 할아버지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다. 1776년 영조의 승하로 즉위하여 1800년까지 조선의 제22대 국왕으로 재위하였다. 재위 초기 홍국영에게 막 강한 실권을 주는 세도 정치를 하였으나 1780년 홍국영을 실각시킨 뒤로는 친정을 하였다. 즉위 후 정약용, 채제공, 안정복 등을 등용, 권력.. 더보기
허균, <홍길동전> 사회제도의 모순을 비판하다. 허균, 사회제도의 모순을 비판하다. 허균(許筠, 1569년 12월 10일(음력 11월 3일) ~ 1618년 10월 12일(음력 8월 24일))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작가, 정치가, 시인이었다. 강릉 초당동 허균의 생가 서자를 차별 대우 하는 사회 제도에 반대하였으며, 작품 《홍길동전》이 그의 작품으로 판명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본관은 양천,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또는 학산(鶴山), 성소(惺所), 성수(惺叟)로 불렸고 후에는 백월거사 (白月居士)로도 불렸다. 1594년(선조 27년)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597년(선조 30년) 다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여 공주 목사를 거쳤으나 반대자에게 탄핵받아 파면되거나 유배당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불교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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