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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헌황귀비 엄씨,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다. 순헌황귀비 엄씨,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다.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년 2월 2일/음력 1월 5일 ~ 1911년 7월 20일)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후궁이다. 대한제국 성립 이후 황비로 책봉되었다. 8세에 입궐하여 을미사변 직후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고 이후 상궁에서 귀인으로, 순빈을 거쳐 순비가 되었다가 1903년에는 황귀비가 된다. 일설에는 계비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계비란 정식으로 책봉된 두 번째 정궁(正宮)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황후가 아닌 황귀비에 책봉된 순헌황귀비에게는 옳지 않은 칭호이다. 본관은 영월이며 1854년 1월 5일 서울에서 증찬정(贈贊政) 엄진삼(嚴鎭三)의 맏딸로 태어났다. 1905년 양정의숙(현 양정고등학.. 더보기
성덕왕, 신라 중대, 하고(下古) 왕대의 국왕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으로 기록되다. 성덕왕, 신라 중대, 하고(下古) 왕대의 국왕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으로 기록되다. 성덕왕(聖德王, 691년 ~ 737년)은 신라의 제33대 왕(재위: 702년 ~ 737년)이다.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자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다. 초명(初名)은 천중(天中). 휘(諱)는 융기(隆基)였으나 당나라(唐)로부터 현종(玄宗) 황제와 휘가 같다는 항의를 받고 흥광(興光)으로 고쳤다. 702년부터 737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702년부터 708년까지 모후인 신목왕후가 섭정하였고 708년부터 737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내정 자식을 두지 못한 효소왕이 죽은 뒤 국인들에 의해 추대되었으며, 즉위 3년(704년) 여름 5월에 승부령(乘府令) 소판 김원태(金元泰)의 딸을 .. 더보기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 봉덕사종,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 봉덕사종,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종이다. 설화에 따라 에밀레종으로 부르거나 봉덕사에 걸려 있던 종이라 하여 봉덕사종이라 부르기도 한다.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었다. 742년부터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손자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했다. 봉덕사에 달았다가 조선시대인 1460년 수해로 봉덕사가 없어지자 영묘사로 옮겼으며, 다시 봉황대(鳳凰臺) 아래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였다. 개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 더보기
미추왕릉, 신라 최초의 김씨 왕, 농업을 장려하다. 미추왕릉, 신라 최초의 김씨 왕, 농업을 장려하다. 경주 미추왕릉 (慶州 味鄒王陵))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 13대 왕인 미추 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이다. 1969년 8월 27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75호 신라미추왕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13대 왕인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미추왕릉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유례왕 14년(297) 이서고국(伊西古國) 사람이 수도인 금성을 공격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가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 누군가 미추왕릉에 댓잎을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미추왕이 .. 더보기
만민공동회, 박성춘, 시민들의 주장과 힘을 보여준 대중운동 만민공동회, 박성춘, 시민들의 주장과 힘을 보여준 대중운동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또는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는 조선말, 대한제국의 대토론회, 시민운동이자 시민사회단체로 독립협회에서 처음 주관하였다가 1898년 4월을 기점으로 독립협회의 영향력에서 독자적인 민중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1897년(광무 1년) 초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 주최하에 민중대회로 처음 개최되었으며, 한성부의 시민, 소상인, 일부 지식인층이 참여했다. 이후 1897년 10월 박정양을 비롯한 정부의 개혁적 관료들과 독립협회가 함께 주관하면서 범국민적인 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정부 측의 박정양, 이상재, 독립협회 측의 서재필, 윤치호 등이 이를 지도하였다. 만민공동회는 처.. 더보기
혜종, 기질이 호탕하고 지혜와 용맹이 뛰어나다. 혜종, 기질이 호탕하고 지혜와 용맹이 뛰어나다. 혜종(惠宗, 912년 ~ 945년 10월 23일 (음력 9월 15일))은 고려 제2대 국왕(재위: 943년 ~ 945년)이다. 자는 승건(承乾), 휘는 무(武), 묘호는 혜종, 시호는 인덕명효선현고평경헌의공대왕(仁德明孝宣顯高平景憲義恭大王)이다. 왕건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오다련의 딸 장화왕후 오씨(吳氏)이며, 비(妃)는 대광(大匡) 임희(林曦)의 딸인 의화왕후이다. 외가의 가세가 미약하여 지위의 위협을 받게 되자 부왕 태조 왕건(太祖 王建)은 고려(高麗) 건국 직후 그를 바로 정윤으로 삼은 뒤에 921년 정식으로 태자에 책봉하였다. 재위 3년만에 사망하였으나 사망원인은 불명확하다. 출생과 책봉 혜종은 912년 나주 흥룡동에서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 더보기
공산전투, 왕건 후백제군에게 포위당해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다. 공산전투, 왕건 후백제군에게 포위당해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다. 공산 동수 전투(公山棟藪戰鬪)는 후삼국 시대인 927년 신라 공산(公山, 현 팔공산) 동수(棟藪, 현 지묘동)에서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른 전투로 견훤이 왕건군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고 이곳에서 신숭겸 등 8명의 장수가 전사해 지명이 공산에서 팔공산으로 바뀌었다는 설화도 있고 반야월 등 대구의 대표 지명들이 이 전투에서 생겼다. 배경 후삼국 시대 당시 고려와 후백제는 처음에는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나 926년 9월에 후백제 왕 견훤이 고려 근품성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로 고려와 후백제는 수차례에 걸쳐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는 대체로 고려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견훤이 신라의 무관 출신임에도 불구.. 더보기
장보고, 신라 왕실의 명을 받은 자객 염장에게 살해되다. 장보고, 신라 왕실의 명을 받은 자객 염장에게 살해되다. 장보고(張保皐, 787년 ~ 846년)는 한국 남북국 시대 신라의 무장이자 해상 호족이다. 그의 출생과 계통은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는 본명을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라고만 적고 있다. 일찍부터 친구 정년(鄭年)과 함께 당의 서주(徐州)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승마와 창술에 특출난 재주를 보이며 군인으로서 출사해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의 직책을 받게 되었다. 흥덕왕 3년(828년) 초에 신라로 돌아온 그는 왕에게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는 참상을 전하며, 완도에 군사 거점을 세워줄 것을 청했다. 마침내 승인을 얻어 1만여 명의 군대를 확보한 그는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세우고 대사(大使)가 되었다. 그의 활약으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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