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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5)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 요동정벌 계획 1392년 건국 지후부터 그는 요동정벌을 계획한다. 1396년 요동정벌의 방안으로 그는 그때까지 각 지역의 왕실측근과 개국공신들이 사적으로 보유하던 사병을 모두 혁파하여 국가의 정규군으로 개편하자는 사병혁파를 단행하였다. 그러자 사병을 중심으로 정변을 세우려고 계획한 이방원은 고려유신 그룹을 규합하여 노골적으로 반감을 품고 역습의 기회를 품게 되었다. 동시에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하기 위하여 명나라로 가는 사신 하륜, 설장수 등을 비롯한 반감을 품은 인사들을 사주하여 은밀히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획책하려 한다고 밀고하였다. 1396년 (태조 5년) 3월 과거 고시관에 임명되어 사양하였으나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해 5월 조유인(曹由仁), 이치 등 33인.. 더보기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4)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4) 세자 책봉 문제 세자를 누구로 임명하느냐는 문제에 관해서 당초의 의론은 "시절이 태평하면 적장자를 세우고, 난세에는 공이 많은 왕자를 세워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신덕왕후 강씨는 자신의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기를 간절히 소원하였고 태조 이성계 역시 방석을 총애하여서 배극렴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은 태조의 의중에 따라 여덟째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태조의 전처 한씨 소생 아들 중 다섯째 인 이방원은 정치적 야심이 가장 컸던 탓에 이 일로 격분하였다. 또한 다른 전처 한씨 소생의 왕자들도 자신들을 배제하고 후처인 강씨의 아들막내 방석이 왕세자가 된 것에 대해 모두 분개하였다. 이것이 훗날 제1차 왕자의 난의 원인이 되었다. 태조가 방석을 세.. 더보기
진안대군, 이방우, 술을 마시고 병이 나서 졸하다. 진안대군, 이방우, 술을 마시고 병이 나서 졸하다. 진안대군(鎭安大君, 1354년 ~ 1394년 1월 15일(1393년 음력 12월 13일))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며, 조선 초기의 왕족, 시인이다. 이름은 이방우(李芳雨)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사호(祠號)는 청덕(淸德), 시호(諡號)는 경효(敬孝)·정의(靖懿)이다. 생애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안변 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고려 말에 과거(문과)에 급제하여 예의판서(禮儀判書)와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고려 우왕 14년(1388년)에 부친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처자를 데리고 교주강릉도 철원 보개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도 국가 일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고 서해도 해주로 옮겨 가서 서너달 살다가,.. 더보기
정종,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상왕으로 물러나다. 정종,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상왕으로 물러나다. 정종(定宗, 1357년 7월 18일 (음력 7월 1일) ~ 1419년 10월 15일 (음력 9월 26일), 재위: 1398년 ~ 1400년)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의 제2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초명은 방과(芳果), 휘는 경(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원(光遠)이다. 1398년부터 140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아우인 정안군(훗날 태종)이 왕세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 선양한 뒤에는 아우 태종이 인문공예 상왕(仁文恭睿 上王)으로 존호(尊號)를 올렸고, 사후 조선 중후기까지 시호인 공정대왕(恭靖大王)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정식으로 묘호와 시호를 올려 정종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定宗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이다. 생애 정종은 공민왕 6년(.. 더보기
신의왕후, 태조의 아내, 향처로 전락하여 자식들과 여생을 보내다. 신의왕후, 태조의 아내, 향처로 전락하여 자식들과 여생을 보내다.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10월 21일(음력 9월 23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첫 아내로 정종과 태종의 생모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에 지병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안천부원군 한경(安川府院君 韓卿)과 삼한국대부인 신씨(三韓國大夫人 申氏)의 딸로 본관은 안변(安邊)이다. 태조 2년(1393년)에 절비(節妃)로 추증되었다가 1398년 그녀의 소생들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태조가 하야하고 그녀의 둘째 아들인 정종이 즉위하여 비로소 왕후로 승격되었다. 시호는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이며,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더보기
하여가, 이방원이 정몽주의 진심을 떠보고 회유하기위해 지은 시 하여가, 이방원이 정몽주의 진심을 떠보고 회유하기위해 지은 시 하여가(何如歌)는 고려 말기, 조선 초기에 이방원(李芳遠)이 지은 시조이다. 하여가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시조 1수로 『해동악부』에 전해지고 있다. 지은이는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과 창업에 공이 큰 조선 제3대의 임금, 태종으로 이 작품은 반대당인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회유하기 위하여 마련된 자리에서 지어 부른 작품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들 엇더며 져런들 엇더료 만수산 (萬壽山) 드렁칡이 얼거진들 엇더리 우리도 이치 얼거져 백년(百年) 지 누리리라. 이런들 또 어떠하며(如此亦如何, 여차역여하), 저런들 또 어떠하리(如彼亦如何, 여피역여하). 성황당의 뒷담이(城隍堂後垣, 성황당후원), 무너진들 또 어떠하리(頹.. 더보기
정몽주, 온건개혁가인 포은 정몽주의 후대 평가 정몽주, 온건개혁가인 포은 정몽주의 후대 평가 정몽주(鄭夢周, 양력 1338년 1월 13일 (1337년 음력 12월 22일) ~ 1392년 4월 26일(음력 4월 4일))는 고려 말기의 문신·외교관이자, 정치가·교육자·유학자이다. 본관은 연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고려 삼은의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360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 출사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고 성균관대사성, 예의판서, 예문관제학, 수원군 등을 지내며 친명파 신진사대부로 활동하였으나 역성혁명과 고려개혁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온건개혁을 선택하였으며, 명나라에 외교관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관직은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과 익.. 더보기
남은,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습격을 받다. 남은,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습격을 받다. 남은(南誾, 1354년 ~ 1398년 10월 6일(음력 8월 26일))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무신으로, 본관은 의령이다. 고려 말기에 왜구 토벌과 신진사대부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 개국에 공을 세웠다. 개국공신 1등으로 의성군에 봉해졌고, 사후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뒤 의성부원군으로 추봉되었다.본관은 의령이고, 시호는 강무(剛武)이다. 행촌 이암의 외손녀사위이기도 하다. 남은은 1354년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후일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영의정을 지낸 남재(南在), 아우는 우상절도사(右廂節度使)를 지낸 남지(南贄)이다. 후일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이나, 장군 남이는 형 남재의 후손들이었다. 어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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