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만나기 위해 지나는 문, 흥례문
흥례문은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입니다.
조선시대의 관리들은 여기서부터 왕을 만나기 위해 마음을 준비했지요.
세종 8년 홍례문이라 이름이 붙여졌는데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흥례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이 '홍력' 이었으므로 '홍'을 피해 흥례문으로 바뀐것이지요.
흥례문 일곽은 1916년 일제가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하여 흥례문 권역을 모두 철거하였습니다.
광복후 '중앙청' 으로 한국전쟁 이후 정부청사로 쓰다가 1986년 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습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하여 1997년 부터 복원공사에 들어가 2001년 10월 26일에 완공되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운 지 85년 만에 다시 제 모습을 찾은 것입니다.
경복궁의 금천, 영제교
조선의 궁궐은 정전의 문 앞에 명당수가 흐르도록 하였습니다.
배산임수의 풍수관에 따라 임금의 공간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세속에서의 나쁜 마음을 버리고 공명정대한 마음으로 입궐하라는 의도로
법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것입니다.
명당수가 흐르는 궁궐의 물길을 금천(禁川)이라고 하며 거룩한 내부 공간과
외부의 일상적 공간을 구분합니다.
금천위에 놓여진 돌다리가 금천교입니다. 여기서 '금(禁)'은 금하다 라는 뜻과
대궐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로 외부의 사악한 기운을 금하는 뜻과 궁궐의 개울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금천교는 궁궐에 따라 고유 명칭이 있습니다.
경복궁의 금천교는 세종 8년 부터 영제교라 불렸습니다.
다릿발은 홍예 형태이며 통로는 삼도로 되어 있습니다.
영제교 난간 양쪽 엄지기둥에는 서수(상서로운 짐승) 네 마리가 잡귀나 사악한
무리가 접근하지 못하도곡 삼엄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영제교 옆 금천 기슭에 있는 상상의 동물인 천록이 사특한 기운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 배산임수 : 땅의 형세가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에 면하여 있음.
◇ 홍예 : 무지개
◇ 삼도 : 어도와 신도를 이르는 말로 어도는 임금이 다니는 길을 말하며 신도란 무신과
문신이 각각 다니는 길로서 세 갈래의 길을 합하여 삼도라고 일컫는다.
정무 부서인 유화문, 조보 발행하는 기별청
영제교를 지나면 왼편으로 유화문이 보입니다. 유화문을 열면 빈청과 승정원이 있었지요.
빈청은 3정승과 정2품 이상의 고위관직자가 모여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거나, 변란(變亂)이나
국상등 긴급한 일이 있을 때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하던 회의실로 사용되었습니다.
흥례문으로 들어온 관리는 유화문 왼쪽의 판문을 통해 궐내각사로 출근하고 큰 행사가 있을 때도
이 문으로 들어와 대기합니다.
유화문 오른편에 붙은 두 칸 집은 기별청입니다. 기별청에서는 조보를 발송했습니다.
조보란 국가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국왕이 내리는 명령과 지시, 유생이나 관리들이
올리는 소장 등의 기사와 함께 사회적 관심거리도 실어 서울과 지방관서, 상류계층에게 돌렸습니다.
매일 작성한 조보는 닷새분씩 묶어서 발송하여 지방관리는 약 일 주일 뒤에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문서는 개국 초에 '기별지' 라고 불리었던 것을 세조 때 부터 '조보'라 불렀고
갑오개혁 때 '관보'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 궐내각사 : 조선왕조의 관청들, 즉 궁궐 외부에 자리하고 있던 육조외에 왕을 근저에서 보필할 필요가 있던
관원들의 관사인 빈청,승정원,대청 등 궁궐내부에 자리하고 있던 관청들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