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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

윤원로, 문정왕후의 동생,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 유배되다. 윤원로, 문정왕후의 동생,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 유배되다. 윤원로(尹元老, ? ~ 1547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척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아들이자 윤원형의 형, 윤원량과 윤원필,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대윤의 영수 윤임은 그의 아버지 윤지임과 8촌형제 간이 된다. 김안로와도 사돈간이 되는데, 김안로의 아들 김희와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 효혜공주의 장녀 김선옥은 그의 아들 윤백원과 결혼했다. 또한 그의 형 윤원량의 딸 숙빈 윤씨는 인종의 후궁이었다. 김안로의 사돈이면서 중종과는 처남매부간이자 인종의 처숙부이고 명종의 외숙부이자 중종의 딸 효혜공주의 사돈으로, 중종과는 이중 삼중 인척관계에 있었다. 생애 1515년 장경왕후가 원자(훗날의 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15.. 더보기
명종,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키다. 명종,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키다. 명종(明宗, 1534년 7월 3일 (음력 5월 22일)~ 1567년 8월 2일 (음력 6월 28일))은 조선의 제13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환(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양(對陽). 사후 시호는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이며 중종의 차남으로 문정왕후의 유일한 친아들이다. 이복 형 인종(부왕 중종의 적장자)이 후사 없이 붕어하기 3일 전 인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로 모후인 문정왕후의 섭정, 친정 이후에는 외척인 윤원형, 윤원로, 윤춘년, 윤백원, 이량, 심연원, 심통원 등에 의해 정사가 좌지우지되면서 혼란을 겪었다. 아들 순회세자를 일찍 잃고 이복.. 더보기
윤원형, 사후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나 1907년 이완용의 건의로 사면 복권되다. 윤원형, 사후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나 1907년 이완용의 건의로 사면 복권되다. 윤원형(尹元衡, 1509년 ∼ 1565년 11월 18일)은 조선 중기의 외척이자 문신으로, 파산부원군 윤지임과 전성부대부인 전의 이씨(全城府夫人 全義李氏)의 넷째 아들이자 문정왕후의 남동생이며, 윤원량 · 윤원로의 동생이며 소윤(小尹)의 영수이다. 명종의 외숙으로 윤임, 김안로, 이량, 심통원 등과 함께 인척세력의 대표적 인물이며 을사사화를 날조했다. 정난정은 그의 첩이었다. 본관은 파평(波平). 자는 언평(彦平)이다. 1533년(중종 28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으로 관직에 올랐으며 외조카인 경원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노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친족인 윤임, 처당숙 김안로(金安老) 등과 갈등했다. 김안로의 공격으로 유배되었.. 더보기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尹任, 1487년 ~ 1545년 8월 30일)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인척. 자는 임지(任之), 본관은 파평이다. 영돈녕부사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윤여필의 아들이자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의 오빠로,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중종을 옹립하는데 기여하였다. 1512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이르렀다. 누이 장경왕후 사후에 자신의 집안인 파평 윤씨에서 문정왕후를 새 왕비로 추천하였는데, 이후 윤원형 일가와는 앙숙이 됐다. 이후 대윤(大尹)의 거두로 윤원형, 윤원로 등 소윤(小尹) 일파와 대립하였다. 윤임은 인종의 외삼촌이었고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이었는.. 더보기
양재역 벽서 사건, 윤임의 잔존 세력을 숙청하다. 양재역 벽서 사건, 윤임의 잔존 세력을 숙청하다. 양재역 벽서 사건이란 경기도 양재역의 벽면에 이런 내용의 벽서가 나붙었던 사건을 말한다. "위로는 여왕(문정왕후), 아래로는 간신이 날뛰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다." 윤원형은 이 벽서 사건이 윤임 잔당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조정에 남은 윤임의 잔존 세력을 모두 숙청했다. 윤원형이 윤임의 잔존 세력에 사림을 포함시킴으로써 갓 조정에 진출했던 사림은 또다시 커다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양재역 벽서 사건을 계기로 을사사화를 피한 사림이 대다수 끌려와 형문을 당하고 유배, 파면당했다.(정미사화) 이 과정에서 사림파의 희생을 막으려는 이언적 등과 갈등, 이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언적을 정계에서 축출한다. 이어 윤원형은 1546년(명종 1년) 1월 자헌대부로 승진한 .. 더보기
문정왕후, 경원대군이 즉위하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섭정하다. 문정왕후, 경원대군이 즉위하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섭정하다.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년 12월 2일(음력 10월 22일) ~ 1565년 5월 5일(음력 4월 6일))는 조선 중기의 왕후이자 섭정으로 중종(中宗)의 제2계비이다. 시호는 성렬인명문정왕후(聖烈仁明文定王后)이다. 1515년(중종 10년) 장경왕후가 승하하여 1517년(중종 12년)에 왕비로 간택, 책봉되었다. 1544년 대비가 되고, 1545년 아들 경원대군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국왕의 고유 권한인 인사문제에까지 개입한 그녀는 아들 명종(明宗)이 12세로 즉위한 1545년부터 1553년까지 8년간 수렴청정으로 섭정하였다. 파산부원군 정평공 윤지임(坡山府院君 靖平公 尹之任)과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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