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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

정조, 수은에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독살설이 제기되다. 정조, 수은에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독살설이 제기되다. 홍국영의 득세와 몰락 1777년(정조 1년) 7월, 괴한이 경희궁에 침입하자 정조는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8월에 다시 괴한이 침입하다 잡혔는데 조사 결과 정조의 외척인 홍상범, 홍계능 등이 유배되어 있던 홍술해와 모의하여 반정을 꾀한 것이 들어났다. 홍국영이 이 사건을 책임지고 처리하였다. 홍국영은 이들이 추대한 은전군을 자진하도록 조치하고 해, 홍상범에게는 사형을 내렸으며, 홍계능은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정후겸의 양모인 화완옹주는 교동으로 유배되었다. 이렇게 하여 정조 즉위 1년 안에 즉위에 반대하였던 세력은 정순왕후의 오라비인 김귀주만이 무사하였을 뿐 모두 제거 되었다. 이후 정조는 홍국영을 특별히 발탁하여 동부승지로 삼았다가.. 더보기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 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 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영조의 차남 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이다. 봉수당에서의 회갑연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이었으나 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 ​(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로도 알려져 있다. 흔히 경의왕후(敬懿王后)라 하지만 죽은 후 받은 시호가 헌경이었고 의(懿) 자는 황후로 추존된 후 받은 제호(帝號)로 이는 잘못된 표기이다. .. 더보기
사도세자, 장조인 사도세자가 죽게 된 이유는 당쟁 때문이었나? 사도세자, 장조인 사도세자가 죽게 된 이유는 당쟁 때문이었나? 장조(莊祖, 1735년 2월 13일(음력 1월 21일) ~ 1762년 7월 12일(음력 윤 5월 21일))는 조선의 왕세자이자 추존왕이다. 영조의 둘째 서자로, 효장세자의 이복 동생이며 정조의 생부이다. 흔히 사도세자(思悼世子) 또는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은 이(李), 이름은 선(愃),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영조의 둘째 아들로 생후 1년만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749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나 노론, 부왕과의 마찰과 정치적 갈등을 빚다가 1762년(영조 38년) 왕명으로 뒤주에 갇혀 아사하였다. 사후 지위만 복권되었고, 양주배봉산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수원 화성 근처 현.. 더보기
정약용, 실학사상을 한 몸으로 집대성하다. 정약용, 실학사상을 한 몸으로 집대성하다. 정약용(丁若鏞, 1762년 8월 5일(음력 6월 16일), 경기도 광주 ~ 1836년 4월 7일(음력 2월 22일))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정약용 중농주의 실학자로 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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