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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동,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운동권의 비판과 함께 한편으론 신군부 최고의 충신이라는 평도 있다. 장세동,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운동권의 비판과 함께 한편으론 신군부 최고의 충신이라는 평도 있다. 장세동(張世東, 1936년 9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전라남도 고흥 출생이다. 호는 남촌(南村)이다.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16기로 졸업하여 군인이 되었고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 당시 중대장과 감찰관으로 다녀왔으며 공수특전여단, 대통령 경호실, 특수전사령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그뒤 특전사령부 작전참모로 재직 중 12.12 사태 및 5·17 비상계엄에 개입하였다. 이후 3공수여단장을 거쳐 제5공화국 출범 이후에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 대통령 경호실장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하였다. 5공청산 때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자처하였고.. 더보기
권람, 단군을 민족의 기원으로 평가하다. 권람, 단군을 민족의 기원으로 평가하다. 권람(權擥, 1416년 ~ 1465년 2월 6일)은 조선 초의 문신, 역사학자, 작가, 문인이다. 자(字)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또는 소한당(所閒堂), 후주당(後週堂)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권근의 손자이다. 남이와 신수근이 그의 사위다.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내다가 한명회와 교유했고, 그를 통해 신숙주 등을 소개받고 수양대군의 측근이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으며, 그 이듬해에는 수양대군과 함께 《역대병요》를 편찬하였다. 1453년(단종 1년) 김종서를 몰아낼 때 앞장섰던 공으로 정난공신 1등관으로 녹훈되고, 승정원우부승지에 특진되었다. 1455년 세조 즉위 후, 수충위사협책정난동덕.. 더보기
황사영 백서 사건, 신유박해에 대한 귀중한 사료로 인정되다. 황사영 백서 사건, 신유박해에 대한 귀중한 사료로 인정되다.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는 조선에서,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인 황사영이 중국 로마 가톨릭교회 북경교구의 주교에게 혹독한 박해를 받는 조선교회의 전말보고와 그 대책을 흰 비단에 적은 밀서(密書)이다. 신유박해에 대한 귀중한 사료로 인정되었다. 황사영은 경상도 창녕(昌寧) 사람으로 정약현(丁若鉉 : 정약용의 맏형, 이복형제)의 사위이다. 중국 천주교회 사제인 주문모(周文謨)신부에게 알렉시오(Alexis)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으며, 1791년(정조 15) 17세의 어린 몸으로 진사에 합격하여 시험관을 놀라게 하였고, 정조로부터 그의 학문적인 재능에 대한 칭찬과 학비를 받았다. 1798~9년경.. 더보기
송시열, 주자학의 대가로 조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 받다. 송시열, 주자학의 대가로 조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 받다. 송시열(宋時烈, 1607년 12월 30일(음력 11월 12일) ~ 1689년 7월 19일(음력 6월 3일))은 조선의 문신·성리학자이다. 주자학의 대가이자 당색으로는 서인, 분당 후에는 노론의 영수이다.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자는 영보(英甫), 아명은 성뢰(聖賚), 성래(聖來),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교산노부(橋山老夫)·남간노수(南澗老叟)·화양동주(華陽洞主)·화양부자(華陽夫子),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효종, 현종 두 국왕의 왕자 시절 가르친 스승이었으며 별칭은 대로(大老), 송자(宋子), 송부자(宋夫子)이다. 1633년(인조 10) 경릉 참봉으로 출사하여 대군사부, 진선, 장령, 찬선, 세자사부, 이조판서, 의정부좌의정.. 더보기
흥선대원군, 통상 수교 거부 정책에 대한 평가 흥선대원군, 통상 수교 거부 정책에 대한 평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년 12월 21일 ~ 1898년 2월 22일 은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화가이며 대한제국의 추존왕이다. 그의 본명은 이하응(李昰應)이다. 부인은 여흥부대부인 민씨이다. 남연군(원래는 인평대군의 6대손이나 후에 양자 입적)과 군부인 민씨의 넷째 아들이며,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친아버지이다. 1863년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국정을 이끌었으며, 안으로는 유교의 위민정치를 내세워 전제왕권의 재확립을 위한 정책을 과단성 있게 추진하였고, 밖으로는 개항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의 침략적 자세에 대하여 척왜강경정책으로 대응하였다. 또한 서원을 철폐 및 정리를 하여 양반·기득권 토호들의 민폐와 노론의 일당독재를 타도하고 남인과 북인을 채용하.. 더보기
명성황후, 평가와 비판, 당시 생존의혹, 명성황후의 한글 편지 명성황후, 평가와 비판, 당시 생존의혹, 명성황후의 한글 편지 명성태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1851년 11월 17일 ~ 1895년 10월 8일 는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왕비이자 추존황후이다. 인현왕후의 생부인 민유중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도시 첨정으로 사후 증 의정부영의정, 여성부원군에 추봉된 민치록이고, 어머니는 감고당 한산 이씨이다. 아명은 자영(玆暎), 본관은 여흥. 출신지는 경기 여흥이며, 여주 나들목 인근에 생가 공원이 있다. 고종의 정비로 1871년 첫 왕자를 5일 만에 잃고, 최익현 등과 손잡고 흥선대원군의 간섭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을 유도했다. 민씨 척족을 기용함으로써 세도정권을 부활시켰으며,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한테 겨냥하는 견제를 위.. 더보기
순종, 융희제, 기유각서 사건으로 허수아비 군주가 되다. 순종, 융희제, 기유각서 사건으로 허수아비 군주가 되다. 순종(純宗, 1874년 3월 25일(음력 2월 8일) ~ 1926년 4월 26일)은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이자, 한반도 역사상 마지막 군주이다. 대한제국 황실의 혈통은 사실상 조선에서 유래하므로, 역사성의 편의상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조선의 제27대 왕으로는 정의될 수 없다. 성은 이(李), 휘는 척(坧)이다. 특징 상기한 바와 같이 그는 부황 고종과는 달리 조선 왕의 신분으로 재위한 기간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조선 왕조의 제27대 왕으로는 볼 수 없다. 그는 대한제국 황제 치세 시절 연호를 따 융희제(隆熙帝: 1907년부터 1910년까지 3년 재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력 성은 이(李), 휘는 척(坧), 본관은 전주(全州), .. 더보기
김재철, 제28대 MBC 사장으로 내정 되었을 때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제기되다. 김재철, 제28대 MBC 사장으로 내정 되었을 때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제기되다. 김재철(金在哲, 1953년 12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언론인으로 제28대 MBC 사장을 지냈다. 김재철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이명박(당시 국회의원)과 각별한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사장으로 내정되었을 때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있었다. 2012년 MBC 노조 총파업 투쟁 과정에서, MBC 노동조합은 무용가 J와 J의 친오빠에 대한 특혜지원 비리가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김재철을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하였다. 경찰은 2013년 1월 15일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감사원은 2013년 2월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에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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