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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 헌애왕후, 김치양과의 사통사건으로 왕실의 권위에 타격을 주다. 천추태후, 헌애왕후, 김치양과의 사통사건으로 왕실의 권위에 타격을 주다. 헌애왕후(獻哀王后, 964년 ~ 1029년 1월 20일 (음력 1월 3일)는 고려의 왕족, 왕비로 고려의 5대 왕 경종의 세 번째 왕비이다. 7대 왕 목종의 모후로, 태조의 아들인 대종과 선의왕후에서 출생하였다. 시호로는 응천계성정덕왕태후(應天啓聖靜德王太后)라 하며 흔히 천추태후(千秋太后)라고도 한다. 경종 사후 궐밖에 나가 살다가 외가 쪽 친척인 김치양과 자주 만나던 중 사통하여 아들을 얻었고, 목종 즉위 후 섭정을 하였으나 자신의 친조카 대량원군을 암살하려 하였다. 경종의 제1비인 헌숙왕후와는 고종 사촌간이었고, 제4비 헌정왕후는 그의 친동생이었다. 생애 초반 헌애왕후는 964년 태조의 아들인 추존왕 대종(戴宗)과 선의왕후의 딸.. 더보기
법흥왕, 연호 건원 사용, 불교를 공인하고 왕권 확립에 힘을 기울이다. 법흥왕, 연호 건원 사용, 불교를 공인하고 왕권 확립에 힘을 기울이다. 법흥왕(法興王, ? ~ 540년 7월, 재위: 514년 ~ 540년)은 신라의 제23대 임금이다. 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원종(原宗) 또는 모즉지(牟卽智, 另卽智), 진(秦)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지증 마립간과 연제부인(延帝夫人)의 아들이다. 그의 아호(雅號)는 법운(法雲)이며 불교 승려로서의 법명은 법공(法空)이다. 눌지왕때 승려 아도 또는 묵호자에 의해 들어온 불교를 공인 및 신라 전국에 장려함으로써 통치체제를 개혁하고 신라의 국민 사상을 통일시킨 명군(名君)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라 문헌 상으로는 최초의 연호인 건원(建元)을 사용하였다.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품관 별로 지정하는 등 왕권 확립에 힘을 기울였다... 더보기
순헌황귀비 엄씨,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다. 순헌황귀비 엄씨,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다.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년 2월 2일/음력 1월 5일 ~ 1911년 7월 20일)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후궁이다. 대한제국 성립 이후 황비로 책봉되었다. 8세에 입궐하여 을미사변 직후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고 이후 상궁에서 귀인으로, 순빈을 거쳐 순비가 되었다가 1903년에는 황귀비가 된다. 일설에는 계비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계비란 정식으로 책봉된 두 번째 정궁(正宮)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황후가 아닌 황귀비에 책봉된 순헌황귀비에게는 옳지 않은 칭호이다. 본관은 영월이며 1854년 1월 5일 서울에서 증찬정(贈贊政) 엄진삼(嚴鎭三)의 맏딸로 태어났다. 1905년 양정의숙(현 양정고등학.. 더보기
성덕왕, 신라 중대, 하고(下古) 왕대의 국왕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으로 기록되다. 성덕왕, 신라 중대, 하고(下古) 왕대의 국왕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으로 기록되다. 성덕왕(聖德王, 691년 ~ 737년)은 신라의 제33대 왕(재위: 702년 ~ 737년)이다.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자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다. 초명(初名)은 천중(天中). 휘(諱)는 융기(隆基)였으나 당나라(唐)로부터 현종(玄宗) 황제와 휘가 같다는 항의를 받고 흥광(興光)으로 고쳤다. 702년부터 737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702년부터 708년까지 모후인 신목왕후가 섭정하였고 708년부터 737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내정 자식을 두지 못한 효소왕이 죽은 뒤 국인들에 의해 추대되었으며, 즉위 3년(704년) 여름 5월에 승부령(乘府令) 소판 김원태(金元泰)의 딸을 .. 더보기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 봉덕사종,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 봉덕사종,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종이다. 설화에 따라 에밀레종으로 부르거나 봉덕사에 걸려 있던 종이라 하여 봉덕사종이라 부르기도 한다.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었다. 742년부터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손자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했다. 봉덕사에 달았다가 조선시대인 1460년 수해로 봉덕사가 없어지자 영묘사로 옮겼으며, 다시 봉황대(鳳凰臺) 아래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였다. 개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 더보기
미추왕릉, 신라 최초의 김씨 왕, 농업을 장려하다. 미추왕릉, 신라 최초의 김씨 왕, 농업을 장려하다. 경주 미추왕릉 (慶州 味鄒王陵))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 13대 왕인 미추 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이다. 1969년 8월 27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75호 신라미추왕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13대 왕인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미추왕릉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유례왕 14년(297) 이서고국(伊西古國) 사람이 수도인 금성을 공격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가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 누군가 미추왕릉에 댓잎을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미추왕이 .. 더보기
만민공동회, 박성춘, 시민들의 주장과 힘을 보여준 대중운동 만민공동회, 박성춘, 시민들의 주장과 힘을 보여준 대중운동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또는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는 조선말, 대한제국의 대토론회, 시민운동이자 시민사회단체로 독립협회에서 처음 주관하였다가 1898년 4월을 기점으로 독립협회의 영향력에서 독자적인 민중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1897년(광무 1년) 초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 주최하에 민중대회로 처음 개최되었으며, 한성부의 시민, 소상인, 일부 지식인층이 참여했다. 이후 1897년 10월 박정양을 비롯한 정부의 개혁적 관료들과 독립협회가 함께 주관하면서 범국민적인 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정부 측의 박정양, 이상재, 독립협회 측의 서재필, 윤치호 등이 이를 지도하였다. 만민공동회는 처.. 더보기
혜종, 기질이 호탕하고 지혜와 용맹이 뛰어나다. 혜종, 기질이 호탕하고 지혜와 용맹이 뛰어나다. 혜종(惠宗, 912년 ~ 945년 10월 23일 (음력 9월 15일))은 고려 제2대 국왕(재위: 943년 ~ 945년)이다. 자는 승건(承乾), 휘는 무(武), 묘호는 혜종, 시호는 인덕명효선현고평경헌의공대왕(仁德明孝宣顯高平景憲義恭大王)이다. 왕건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오다련의 딸 장화왕후 오씨(吳氏)이며, 비(妃)는 대광(大匡) 임희(林曦)의 딸인 의화왕후이다. 외가의 가세가 미약하여 지위의 위협을 받게 되자 부왕 태조 왕건(太祖 王建)은 고려(高麗) 건국 직후 그를 바로 정윤으로 삼은 뒤에 921년 정식으로 태자에 책봉하였다. 재위 3년만에 사망하였으나 사망원인은 불명확하다. 출생과 책봉 혜종은 912년 나주 흥룡동에서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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