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보기

안압지, 월지, 신라 왕궁의 별궁 터 안압지, 월지, 신라 왕궁의 별궁 터 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과 月池)는 경주시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 터 이다.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文武王) 14년(674년)에 황룡사 서남쪽 372m 지점에 조성되었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무산(巫山)을 나타내는 12개 봉우리로 구성된 산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동양의 신선 사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섬과 봉우리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는 가장 대표적인 신라의 원지(苑池)이다. 왕궁에 딸린 연못으로 서쪽에 별궁인 임해전이 있으며, 동쪽과 북쪽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고, 연못 안에는 3개의 성(섬)이 있다. 별궁인 임해전과 여러 부속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 더보기
검모잠, 궁모성에서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전개하다. 검모잠, 궁모성에서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전개하다. 검모잠(劍牟岑, ? ~ 670년)은 고구려의 부흥운동 지도자로 벼슬은 대형(大兄)이었다. 고구려 멸망 후 유민을 규합하고 옛 왕족 안승을 옹립하여 부흥운동에 나섰다. 신라의 지원을 받아 당(唐)의 세력을 몰아내려 했으나, 당군의 반격과 그에 따른 후퇴 와중에 안승에 의해 살해당했다. 생애 《구당서》고종본기에는 겸모잠(鉗牟岑)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림성(水臨城) 사람이라고만 알려진 그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2년이 지난 670년(경오년, 당 고종 함형(咸亨) 원년) 4월에 궁모성(窮牟城)에서 거병하여 부흥운동을 전개했다. 검모잠이 거병했을 당시 고구려 부흥군은 신라의 지원 아래서 활약하고 있었다. 신라군과 연합한 고구려 부흥군 세력은 한때 압록강을 넘어 요동까.. 더보기
비형랑, 진지왕의 차남이자 서자, 귀신과 놀다. 비형랑, 진지왕의 차남이자 서자, 귀신과 놀다. 김비형(金鼻荊, 581년 ~ 몰년 미상)은 신라의 왕족으로 진지왕의 차남이자 서자로, 진평왕 때의 인물이다. 군호는 비형랑군(鼻荊郞君)이다. 실존인물이지만 그의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삼국유사》에만 서술되어있어 그것을 통해 생애를 추측할뿐이다. 생애 《삼국유사》에 따르면, 비형은 진지왕이 사량부의 미인 도화부인(桃花夫人)과 사통하여 낳은 자식이다. 579년에 진지왕은 도화부인을 불러 후궁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도화부인은 남편이 있다며 거절하였다. 그 해 진지왕은 폐위되어 죽었다. 2년 뒤인 581년, 도화부인의 남편이 죽자 진지왕의 귀신이 도화부인에게 나타나 사통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진평왕은 비형을 불러 궁중에 살게 하고 15세 때 집사.. 더보기
진평왕의 치세, 일화, 비형랑과 왕의 옥대 진평왕의 치세, 일화, 비형랑과 왕의 옥대 진평왕(眞平王, ? ~ 632년, 재위 579년 ~ 632년)은 신라의 제26대 왕이다. 성은 김(金), 휘는 백정(伯淨, 白淨, 白丁), 구당서에는 진평(眞平) 으로 기록되어있다. 진흥왕의 장손으로 아버지는 진흥왕의 장남인 동륜태자, 어머니는 갈문왕(葛文王) 김입종(金立宗)의 딸 만호부인(萬呼夫人)이고, 왕비는 복승갈문왕(福勝葛文王)의 딸 마야왕후(摩耶夫人)이다. 579년 숙부인 진지왕이 폐위되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후 584년까지 조모인 사도태후 박씨가 섭정하였고 584년부터 친정 하였다. 초기 삶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역사서에는 출생연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화랑세기에는 567년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평왕은 태어나면서부터.. 더보기
아로공주, 박혁거세 거서간의 따르 신라 시조묘의 제사를 주관하다. 아로공주, 박혁거세 거서간의 따르 신라 시조묘의 제사를 주관하다. 아로공주(阿老公主)는 남해차차웅의 친누이이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딸로, 신라 시조묘의 제사를 주관하였다. 생애 시조묘(始祖廟)의 제사장(祭司長)이었다. 제2대 남해차차웅의 누이이다. 서기 65년 (남해차차웅 3년)에 세워진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사당에 일년에 네 차례 정기적으로 지내는 제사를 맡았다. 신라 초기의 왕실 여성은 왕권의 하나인 제사권을 분담하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신처(神妻)로서 조령(祖靈)에 봉사하는 여성은 미혼녀일 것이 요구되었으므로, 기실 그녀는 남해차차웅의 왕비인 아루부인(阿婁夫人)과 같은 인물이면서도 남해차차웅과 남매관계에 있다고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아로의 왕실제사 기록은 본디 사제(司祭).. 더보기
황룡사, 신라 제일급의 대찰,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다. 황룡사, 신라 제일급의 대찰,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다. 황룡사(皇龍寺)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서, 경주에서 가장 컸던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황룡사는 9층 목탑과 장륙상(丈六像)과 더불어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유명하였다. 신라의 사찰로 553년(진흥왕 14년) 기공이 시작되어 569년에 완공되었다고 여겨지나, 566년(진흥왕 27년) 일단 준공되었다가 645년(선덕여왕 14년)에 완성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려 고종 25년(1238년) 에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현재 그 터인 황룡사지(皇龍寺址) 가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황룡사 황룡사(皇龍寺)는 신라의 제일급의 대찰이었다. 창건설화(創建說話)에 의하면 새로운 궁전을 지으려 하였으나 황룡(黃龍)이 나타나.. 더보기
알영부인, 박혁거세 거서간의 부인, 남해 차차웅과 아로공주를 낳다. 알영부인, 박혁거세 거서간의 부인, 남해 차차웅과 아로공주를 낳다. 알영부인(閼英夫人, 기원전 53년 ~ ?)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부인이자 남해 차차웅의 모후이다. 성씨는 김씨이다. 기록에 따르면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낳은 알에서 출생하였으며 그가 태어난 자리를 알영정이라 부른다. 생애 알영부인은 기원전 53년 경주의 알영정(閼英井)에서 태어났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용이 알영 우물에 나타나 오른쪽 갈빗대에서 알영을 낳았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노파가 데려다 양육하였으며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이름지었다. 성장한 뒤에 덕이 많다는 말을 들은 혁거세가 부인으로 맞아들였다고 한다. 한편 《삼국유사》에 따르면 사량리 알영정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에서 알영을 낳았다고 한다.. 더보기
사소부인, 박혁거세 거서간의 생모, 선도산의 산신 사소부인, 박혁거세 거서간의 생모, 선도산의 산신 사소부인(娑蘇夫人) 또는 서술산성모(西述山聖母)는 《삼국유사》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생모로 전혀 내려오는 인물로, 경주시 선도산의 산신이다. 다른 이름으로 선도산성모(仙桃山聖母),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파소부인(婆蘇夫人) 등으로도 불린다. 점필재 김종직은 사소부인이 지리산 산신과 동일인이라 보기도 했다. 생애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박혁거세 거서간이 하늘에서 강림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사로국 6부 촌장들이 임금을 세우는 회의를 하던 중 하늘에서 백마가 운반해온 큰 알에서 박혁거세 거서간이 나왔다는 내용으로 서술하였다. 그러나 일연은 이 이야기 옆에 작은 글씨로 주석을 단다. 서술자가 말하기를 “서술성모(西述聖母)가 박혁거세 거서간을 낳았다”..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