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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의 어제 서문과 본문에 해당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의 어제 서문과 본문에 해당 《훈민정음》(훈민정음, 訓民正音)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지은 책의 제목, 그리고 그 책에서 해설하고 있는 뒷날 한글로 불 리게 된 한국어의 표기 문자 체계를 말한다. 한글은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후, 1446년 음력 9월에 이를 반포하면서 조선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을 통하여 문자와 천지인을 바탕으로 하는 음양오행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모음은 음양의 원리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기본 모음'ㆍ · ㅡ · ㅣ'를 보면 'ㆍ'는 양(陽)인 하늘(天)을 본 떠 만 들고, 'ㅡ'는 음(陰)인 땅(地)을 본 떠 만들었으며 'ㅣ'는 음과 양의 중간자인 인간(人)의 형상을 본 떠 만.. 더보기
김홍도, 양반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화가 자화상 김홍도, 양반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화가 김홍도(金弘道, 1745년~ 1806)는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첩취옹(輒醉翁)이다. 정조 시대 때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여겨진다. 그는 산수화, 풍속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가였지만 고사인물화 및 신선도, 화조화, 불화 등 모든 분야에서 독창적인 회 화를 구축한 화가이기도 하다. 주로 어명·고관의 명, 양반의 청탁 을 받아 그림을 그렸지만, 한편으로는 양반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상민·중인·천민 등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화가로 우리에게 주목받고 있다. 또한 그는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고, 시도 .. 더보기
곽재우, 붉은 갑옷을 입고 용맹하게 왜군을 무찌른 홍의장군(1) 곽재우, 붉은 갑옷을 입고 용맹하게 왜군을 무찌른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1552년 8월 28일 ~ 1617년 4월 10일)는 조선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의병장이다. 34세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문장의 글귀가 왕의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고, 40세가 넘도록 고향에서 학문과 낚시질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관군이 일본군에게 전멸당하자, 당시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스스로 의병을 조직, 붉은 비단으로 된 갑옷을 입고 활동하여 천강홍의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의 용맹성에 놀란 왜병들은 곽재우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다 한다. 여러번 승리한 공로로 찰방, 조방장 등을 지낸뒤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 더보기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3)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 조선의 건국 6월 정도전은 비로소 소환되어 정치 일선에 나서서 새 왕조 창업을 위한 정지 작업을 단행하여 7월17일 공양왕의 선양을 이끌어 내어 이성계를 임금으로 추대하여 새 왕조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 왕조가 건국되자 정도전은 왕명을 받아 새로운 왕조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17조의 〈편민사목〉(便民事目)을 지어 발표하였다. 또한 조선 건국을 반대한 정적 등 반대파를 일소하였다. 조선을 건국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된 정도전은 문하시랑 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겸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등의 군국의 요직을 겸함으로써 권력을 손에 쥐어 조선의 핵심 실세가 되어 행정, 군사, 외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전반적인 문물 제도와 정책의 대부분을 직접 정비해 나갔.. 더보기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인조에 의해 법살당하다.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인조에 의해 법살당하다. 민회빈 강씨(한자: 愍懷嬪 姜氏, 1611년 ~ 1646년 4월 30일/음력 3월 15일)는 조선 소현세자의 부인이다. 병자호란으로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도르곤에 의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귀환했다. 민회빈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상소를 처음 올린 김홍욱은 국문을 받던 중 장살되었는데, 이는 민회빈의 무죄가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인조에 의해 법살당했으나 당대에도 신독재 김집, 송시열, 김홍욱, 송준길 등은 그녀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여러 번 억울함을 신원하는 상소가 올려졌으나 거절되었고, 숙종 때 송시열이 다시 그녀의 억울함을 주장하여 신원을 청 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뒤 숙종 때 송시열, 김수항 등의 신원 상.. 더보기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1)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 정도전 1342년~ 1398년 10월6일 고려말기와 조선초기의문신(文臣), 무신(武臣), 유학자이자 시인이며,외교관, 정치가, 유교사상가, 유학교육자이다. 조선의 초기 성리학자의 한사람이며,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峯, 三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별칭은 해동장량(海東張良)이다. 아버지는 형부상서 염의선생 정운경이고 어머니는 우연의 딸 영천 우씨이다. 본관은 봉화(奉化). 과거 급제 후 성균관 등에 있으면서 성리학을 장려하였고, 외교적으로는 권문세족에 대항하여 명나라와의 외교론을 주장하다 여러 번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였으며 1383년 이성계를 만나 정사를 논하다가 역성혁명론자가 되었다. 이후 정몽주, 이성계 등과 함께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 더보기
폐비 윤씨,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가 되다. 폐비 윤씨,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가 되다.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년 7월 15일 (음력 윤 6월 1일)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 며 둘째부인이다. 조선 10대 왕 연산군과 대군을 낳았으므로 두아들에겐 생모가 된다.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에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 를 내어 폐비(廢妃)당했다. 그러나 연산군 즉위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가 추존되었다.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 와 장흥부부인 신씨(長興府夫人 申氏)의 딸로 윤관의 11대손 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남편인 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 더보기
여수. 순천 사건,4.3사건 진압 명령에 반대한 군부대가 주동하여 여수에서 봉기하다. 여수. 순천 사건, 4.3사건 진압 명령에 반대한 군부대가 주동하여 여수에서 봉기하다.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줄여서 여순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2개월 뒤인 1948년 10월 19일,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 수를 비롯한 일련의 남로당 계열 장교들과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에 반대한 군부대가 주동하여 2,000여 명의 군인이 전라남도 여수에서 봉기함으로 인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좌·우익 세력으로부터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 이다. 반란군에 의해 경찰 74명, 우익 인사 16명을 포함해 약 150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됐고, 정부 진압 군경이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 에서 최소 439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철권 통치와 반공주의 노선을 강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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