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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보기

영휘원과 숭인원 이야기, 담 하나를 경계로 대한제국을 보는 듯 하다. 영휘원과 숭인원 이야기 영휘원과 숭인원이 있는 천장산(天藏山)은 하늘이 감추었다는 이름이며, 한양의 주산 북악산의 한 줄기가 뻗어 내려온 곳으로 조선황실의 땅이었다. 천장산의 남쪽 자락에 있는 영휘원과 숭인원은 대한제국(1897 - 1919)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 고종황제)의 황귀비인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와 의민황태자의 맏아들이자 엄귀비의 손자인 이진(1921~1922)이 모셔져 있다. 번잡한 청량리동에서 담 하나를 경계로 숲이 우거진 아담한 공간이 펼쳐지는데, 저물어가는 대한제국을 보는 듯 그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영휘원 엄귀비는 조선 철종 5년(1854) 11월에 평민 엄진삼(嚴鎭三)의 딸로 태어나 5살에 아기나인(內人)으로 궁에 들어왔는데, 명성황후 민씨의 총애를 받아 그를 모시.. 더보기
경종, 의릉, 소론의 지지로 왕이 되다. 경종, 의릉, 소론의 지지로 왕이 되다. 능의 구성 의릉은 20대 왕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의 능으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한 언덕에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 동원상하봉(同原上下封)능이다. 위쪽에 있는 경종의 능침에만 곡장을 둘렀고, 왕릉과 왕후릉 모두 혼유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석물은 별도로 배치하였다. 이러한 배치 양식은 능혈의 폭이 좁아 왕성한 생기가 흐르는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지리적 이유이며 자연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능원을 조성하려는 우리 민족만의 자연관을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능묘 조각들은 규모가 작고 왜소한 편이다. 봉분에는 난간석을 설치하였으며, 난간 석주에 방위를 나타내는 십이지를 문자로 간략히 새겨 넣었다. 경종 능의 망주석 세호는 왼쪽은 위를 향해 기어오.. 더보기
현종, 숭릉, 외국에서 출생한 유일한 왕 현종, 숭릉, 외국에서 출생한 유일한 왕 능의 구성 왕과 왕비를 하나의 곡장 안에 모셔 봉분이 나란히 2기로 조성된 능을 쌍릉이라고 한다. 높지 않은 언덕 위에 쌍릉으로 조영된 숭릉은 왕릉과 왕비릉 모두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으로 연결되었고, 능침 앞에 혼유석이 하나씩 놓여 있다. 곡장 안의 석양과 석호 각 2쌍과 망주석 1쌍이 초계를 이루었고, 중계에는 장명등, 문석인 1쌍과 석마 1쌍이 배치되었으며, 하계에는 무석인 1쌍과 석마 1쌍이 배치되었다. 봉분 앞의 장명등과 망주석에는 인조의 장릉처럼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망주석 위쪽에 ‘세호’라고 불리우는 작은 동물 조각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눈길을 끈다. 문석인은 미소를 머금고 온화한 모습이고 무석인은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절도 있는 모습.. 더보기
영조의 능, 난간석을 둘러 만든 쌍릉 영조의 능, 난간석을 둘러 만든 쌍릉 능의 구성 원릉은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난간석을 둘러 만든 쌍릉이다. 왕릉과 왕비릉 앞에는 혼유석이 각각 놓여 있고,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세워져 있다. 망주석 기단부에 조각된 꽃무늬가 세련되고 화려하다. 좌우 세호 중 오른쪽 망주석에 새겨진 세호는 위를 향하고 있고, 왼쪽 망주석에 새겨진 세호는 아래로 기어 내려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능의 중간에 놓인 사각옥개형 장명등은 화사석(火舍石)과 옥개석 부분을 제외하고 상, 중, 하대석 부분은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문석인은 전체적으로 비율과 입체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나, 사실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또한 무석인은 장군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위풍당당하기보다는 유약한 모습을 하고 있다... 더보기
선조,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목릉 선조,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목릉 능의 구성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목릉에는 14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세 사람이 잠들어 있다. 같은 능역 안의 각각 다른 언덕에 왕릉과 왕비릉을 조성한 동원이강릉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제일 왼쪽에 보이는 것이 선조의 능이고, 가운데가 의인왕후, 오른쪽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선조의 능에는 3면의 곡장이 둘러져 있고, 병풍석에는 십이지신상과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여기에 난간석과 혼유석, 망주석 1쌍과 석양, 석호 2쌍이 배치되어 전형적인 상설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의인왕후릉은 병풍석이 생략된 채 난간석만 둘러져 있다. 임진왜란을 치른 후 능을 조성했기 때문에 석물들의 크기만 클 뿐 사실적이지도 입체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더보기
문종, 현릉 5대 문종(文宗) 능호 : 현릉 조성시기 : 1452년(단종 즉위년) 9월 1일 능의구성 현릉에는 5대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가 잠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왕과 왕비를 한 능에 묻는 경우에는 다양한 양식이 존재합니다. 현릉의 예처럼, 같은 능의 이름 아래 있지만, 왕과 왕비의 능을 각각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능을 동원이강릉이라고 합니다.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위의 언덕에 있는 능이 문종의 능이고, 오른쪽 언덕의 능이 현덕왕후의 능입니다. 홍살문을 비롯하여 정자각, 비각 등을 하나씩만 만들어놓아 이 능이 동원이강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현릉의 능제는 『국조오례의』의 본이 된 세종대왕의 예전 능의 제도를 따랐습니다. 병풍석에서는 이전 왕릉에 있던 방울과 방패 무늬가 사라졌고 구름무늬가 도.. 더보기
건원릉, 태조의 능 1대 태조(太祖) 건원릉 능이야기 ◎ 1대 태조(太祖) ◎ 능호 : 건원릉 ◎ 위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4- ◎ 지정번호 : 사적 제193호 ◎ 조성시기 : 1408년(태종8) 9월 9일 ◎ 능의구성 건원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능으로, 조선 왕릉 제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 능제는 전체적으로 고려 공민왕의 현릉을 따르고 있으나, 고려 시대에는 없던 곡장을 봉분 주위에 두르는 등 세부적으로 석물의 조형과 배치 면에서 일정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석물의 조형은 남송 말기의 중국풍을 거의 따르고 있습니다. 봉분에는 다른 왕릉들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풀을 덮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태종이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높고 웅장한 봉분의 .. 더보기
조선 왕릉이란? 능, 원, 묘의 구분 조선왕릉이란?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고유의 유적입니다. 왕릉 개개의 완전성은 물론이고 한 시대의 왕조를 이끌었던 역대 왕과 왕비에 대한 왕릉이 모두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가치가 있습니다. 보기 드물게 긴 역사를 가진 왕조 1392년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리고 탄생한 조선 왕조는 이후 1910년까지 무려 519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이어갔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왕조가 5백 년 이상 지속된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유례입니다. 이러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조선 왕조에는 27대 왕과 왕비 및 추존왕과 왕비가 있는데, 이 왕족의 무덤을 조선왕릉이라 합니다. 능, 원, 묘의 구분 왕족의 무덤은 왕실의 위계에 따라 능, 원, 묘로 분류됩니다. 능(陵)은 추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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