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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청정

순조, 대리청정기의 세도 정치 견제를 시도하다. 순조, 대리청정기의 세도 정치 견제를 시도하다. 순조(純祖, 1790년 7월 29일 (음력 6월 18일) ~ 1834년 12월 13일 (음력 11월 13일))는 조선의 제23대 왕(재위 1800년-1834년)이며 대한제국의 추존황제이다. 성은 이(李), 휘는 공(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보(公寶), 호는 순재(純齋), 사후 시호는 순종연덕현도경인순희문안무정헌경성효대왕(純宗淵德顯道景仁純禧文安武靖憲敬成孝大王)이다. 이후 철종 때 정원용(鄭元容)의 의견에 따라 묘호가 순종에서 순조로 바뀌었고, 1897년 숙황제(肅皇帝)로 추존하고 존호를 더하여 정식 시호는 순조연덕현도경인순희체성응명흠광석경계천배극융원돈휴의행소륜희화준렬대중지정홍훈철모건시태형창운홍기고명박후강건수정계통수력건공유범문안무정영경성효숙황제(純祖.. 더보기
인종,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다. 인종,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다. 인종(仁宗, 1515년 3월 10일 (음력 2월 25일) ~ 1545년 8월 7일(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2대 임금(재위 1544년 ~ 1545년)이다. 성은 이(李), 휘는 호(峼),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천윤(天胤)이다. 사후 시호는 인종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仁宗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이며 중종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인 인성왕후이다. 생애 인종은 실록에 따르면, "전하께서는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화려한 치장을 한 궁녀들을 쫓아내었고, 우애가 깊어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주었다."라는 구절이 .. 더보기
섭정, 국왕을 대신해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다. 섭정, 국왕을 대신해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다. 섭정(攝政)은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에서 군주가 어려서 정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을 때 또한 군주가 병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 할 때 국왕을 대신해서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던 사람이나 그 일을 가리킨다. 동양에서는 황태자나 왕세자가 다스리는 것과 대리청정, 황태후나 대왕대비 등 여자들이 다스리는 것은 수렴청정 그리고 신 하 중 고명대신인 대신이 다스리는 것 또는 그 대신을 섭정승(攝政丞)이라 한다. 조선에서는 섭정이라는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고, 수렴청정과 대리청정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다. 동양에서는 다음과 같은 때에 섭정이 이루어졌다. 조선 : 종의 대왕대비인 정희왕후 윤씨, 고종의 대왕대비인 신정황후 조씨 (그러나 실제 정사는 흥선대원군이 돌보았다.. 더보기
대리청정, 임금의 정치를 대신 수행한 조선의 왕세자 대리청정, 임금의 정치를 대신 수행한 조선의 왕세자 대리청정(代理聽政)은 조선 시대에 임금의 재가(허락)를 받아 임금의 정치 등 여러 일을 대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섭정). 보통 대리청정은 왕세자 및 왕세손이 하였으며, 가끔 왕세제가 할 때도 있었다. 대리청정할 때의 왕세자 및 왕세손, 왕세제를 소조(小朝)라 했고, 그 당시의 국왕을 대조(大朝)라 부른다. 조선 왕조의 대리청정 태종 : 부왕 태조 때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는 반발을 무마하는 시간을 벌고 왕위 찬탈의 오명을 피하기 위해 형 정종을 세자 책 봉되게끔 했다가 다시 실권 없는 보위에 올려 정종 대신에 왕세제가 아닌 왕세자로서 1398년부터 1400년까지 대리청정하였다. 당시 맏형이자 태조의 적장자였던 진안대군이 개국한지 불과 1년 후에 훙서한.. 더보기
경종, 의릉, 소론의 지지로 왕이 되다. 경종, 의릉, 소론의 지지로 왕이 되다. 능의 구성 의릉은 20대 왕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의 능으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한 언덕에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 동원상하봉(同原上下封)능이다. 위쪽에 있는 경종의 능침에만 곡장을 둘렀고, 왕릉과 왕후릉 모두 혼유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석물은 별도로 배치하였다. 이러한 배치 양식은 능혈의 폭이 좁아 왕성한 생기가 흐르는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지리적 이유이며 자연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능원을 조성하려는 우리 민족만의 자연관을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능묘 조각들은 규모가 작고 왜소한 편이다. 봉분에는 난간석을 설치하였으며, 난간 석주에 방위를 나타내는 십이지를 문자로 간략히 새겨 넣었다. 경종 능의 망주석 세호는 왼쪽은 위를 향해 기어오.. 더보기
사도세자, 장조인 사도세자가 죽게 된 이유는 당쟁 때문이었나? 사도세자, 장조인 사도세자가 죽게 된 이유는 당쟁 때문이었나? 장조(莊祖, 1735년 2월 13일(음력 1월 21일) ~ 1762년 7월 12일(음력 윤 5월 21일))는 조선의 왕세자이자 추존왕이다. 영조의 둘째 서자로, 효장세자의 이복 동생이며 정조의 생부이다. 흔히 사도세자(思悼世子) 또는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은 이(李), 이름은 선(愃),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영조의 둘째 아들로 생후 1년만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749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나 노론, 부왕과의 마찰과 정치적 갈등을 빚다가 1762년(영조 38년) 왕명으로 뒤주에 갇혀 아사하였다. 사후 지위만 복권되었고, 양주배봉산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수원 화성 근처 현.. 더보기
영조, 노론과 소론의 당론 조제와 탕평책을 실시,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다. 영조, 노론과 소론의 당론 조제와 탕평책을 실시,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다. 영조(英祖, 1694년 10월 31일 (음력 9월 13일) ~ 1776년 4월 22일 (음력 3월 5일) )는 조선의 제21대 임금 (재위, 1724년 10월 16일 ~ 1776년 4월 22일)이다.성은 이(李), 휘는 금(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숙 (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숙종의 서장자(차남)로 숙종 생존 시부터 잠재적인 계승권자였으며, 경종 때 왕세제로 책봉된다. 그러나 신임사화 등으로 위기를 넘기다가 경종의 급서로 즉위한다. 영조의 21살때의 모습 이후 노론과 소론의 당론 조제와 탕평책, 악형 폐지, 서적 간행 등을 추진하였으나, 탕평론은 실패했고 둘째 아들 사도세자를 사형시키게 된다. 숙종(肅宗).. 더보기
조선의 왕, 세자 책봉 조선의 왕, 세자 책봉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왕위를 계승할 자, 세자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원칙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중전의 몸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 왕이 될 사람은 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왕손은 '대를 이을 아들'이라는 의미의 세자(世子)로 책봉되어, 후계자로서의 준비에 만전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조선 27대 왕 중에 위의 적장자 원칙에 따라 세자 책봉을 받고 왕위에 오른 임금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7명입니다. 적장자는 아니지만 그 덕을 인정받거나 중전에게 아들이 없어 후궁의 아들이나 왕족으로서 왕위에 오른 임금은 19명입니다. 의경세자(덕종), 순회세자, 소현세자, 효명세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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