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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강릉 명종의 묘, 소윤과 문정왕후의 권세에 눌려 뜻을 펴보지 못하다. 강릉 명종의 묘, 소윤과 문정왕후의 권세에 눌려 뜻을 펴보지 못하다. 위치 :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능의 형식 : 쌍릉 능의 조성 : 1567년(선조 즉위), 1575년(선조 8) 능의 구성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강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전체적인 능침은 문정왕후의 태릉과 같은 형태로 조성하여,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능침아래에는 홍살문, 향·어로, 정자각, 비각이 있고, 정자각 왼편에는 둥근 어정(御井)이 있다. 어정이란 왕이 마실 물을 위해 판 우물을 말한다. .. 더보기
윤원로, 문정왕후의 동생,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 유배되다. 윤원로, 문정왕후의 동생, 윤임과 다투다가 파직· 유배되다. 윤원로(尹元老, ? ~ 1547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척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아들이자 윤원형의 형, 윤원량과 윤원필,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대윤의 영수 윤임은 그의 아버지 윤지임과 8촌형제 간이 된다. 김안로와도 사돈간이 되는데, 김안로의 아들 김희와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 효혜공주의 장녀 김선옥은 그의 아들 윤백원과 결혼했다. 또한 그의 형 윤원량의 딸 숙빈 윤씨는 인종의 후궁이었다. 김안로의 사돈이면서 중종과는 처남매부간이자 인종의 처숙부이고 명종의 외숙부이자 중종의 딸 효혜공주의 사돈으로, 중종과는 이중 삼중 인척관계에 있었다. 생애 1515년 장경왕후가 원자(훗날의 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15.. 더보기
소수서원, 풍기 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재실을 마련하여 선비들의 배움터로 삼다. 소수서원, 풍기 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재실을 마련하여 선비들의 배움터로 삼다. 소수서원(紹修書院)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서원이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 서원이며,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영풍군은 본디 영주, 풍기, 순흥 세 고을이 비슷한 규모로 솔밭처럼 나뉘어 오랜 역사를 이루어온 곳이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자리는 원래 숙수사라는 이름의 사찰터로, 서원 입구에는 현재까지 4m 높이의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이 평소 자신이 흠모해 왔던 고려의 유학자 안향의 연고지인 이곳 풍기 땅에 부임한 것을 계기로 그의 향리에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에는 사당 앞에 향교 .. 더보기
인종,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다. 인종,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다. 인종(仁宗, 1515년 3월 10일 (음력 2월 25일) ~ 1545년 8월 7일(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2대 임금(재위 1544년 ~ 1545년)이다. 성은 이(李), 휘는 호(峼),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천윤(天胤)이다. 사후 시호는 인종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仁宗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이며 중종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인 인성왕후이다. 생애 인종은 실록에 따르면, "전하께서는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화려한 치장을 한 궁녀들을 쫓아내었고, 우애가 깊어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주었다."라는 구절이 .. 더보기
덕흥대원군, 선조는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다가 끝내 추존하지 못하다. 덕흥대원군, 선조는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다가 끝내 추존하지 못하다.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1530년 4월 2일 ~ 1559년 6월 14일)은 조선 중기의 왕자이며 조선 최초의 대원군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휘는 이초(李岹), 자는 경앙(景仰), 아명(兒名)은 이환수(李歡壽)이다.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의 사친(私親)으로 선조는 생부인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그는 당시 적서를 가리던 그 시대에, 중종 임금의 서자였고, 선조는 서얼 콤플렉스와 방계승통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순조 때 왕족 아들의 수가 귀해지자 선조의 왕자군(王子君) 후손들에게 왕위 계승권을 적용시켰다가 결국 뒤이어 덕흥대원군의 직계 후손들에게도 왕위 계승권을.. 더보기
양재역 벽서 사건, 윤임의 잔존 세력을 숙청하다. 양재역 벽서 사건, 윤임의 잔존 세력을 숙청하다. 양재역 벽서 사건이란 경기도 양재역의 벽면에 이런 내용의 벽서가 나붙었던 사건을 말한다. "위로는 여왕(문정왕후), 아래로는 간신이 날뛰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다." 윤원형은 이 벽서 사건이 윤임 잔당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조정에 남은 윤임의 잔존 세력을 모두 숙청했다. 윤원형이 윤임의 잔존 세력에 사림을 포함시킴으로써 갓 조정에 진출했던 사림은 또다시 커다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양재역 벽서 사건을 계기로 을사사화를 피한 사림이 대다수 끌려와 형문을 당하고 유배, 파면당했다.(정미사화) 이 과정에서 사림파의 희생을 막으려는 이언적 등과 갈등, 이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언적을 정계에서 축출한다. 이어 윤원형은 1546년(명종 1년) 1월 자헌대부로 승진한 .. 더보기
문정왕후, 경원대군이 즉위하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섭정하다. 문정왕후, 경원대군이 즉위하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섭정하다.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년 12월 2일(음력 10월 22일) ~ 1565년 5월 5일(음력 4월 6일))는 조선 중기의 왕후이자 섭정으로 중종(中宗)의 제2계비이다. 시호는 성렬인명문정왕후(聖烈仁明文定王后)이다. 1515년(중종 10년) 장경왕후가 승하하여 1517년(중종 12년)에 왕비로 간택, 책봉되었다. 1544년 대비가 되고, 1545년 아들 경원대군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국왕의 고유 권한인 인사문제에까지 개입한 그녀는 아들 명종(明宗)이 12세로 즉위한 1545년부터 1553년까지 8년간 수렴청정으로 섭정하였다. 파산부원군 정평공 윤지임(坡山府院君 靖平公 尹之任)과 .. 더보기
비변사, 왜란과 호란 이후 독자적인 합의기관이 되다. 비변사, 왜란과 호란 이후 독자적인 합의기관이 되다. 비변사(備邊司)는 조선 중기 이후의 행정 관청이다. 비국(備局)·주사(籌司)라고도 한다. 비변사는 왜란과 호란 이후 의정부와 6조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역으로 약화시키고 이런 이유로 묘당(廟堂)이라 불리기도 했다. 조선 초기부터 정치체제는 정무와 군무를 구분하여 문·무의 관직을 분명히 하고 무관은 정무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정무는 민정·군정 모두 의정부가 맡아 다스리고 2품 이상의 문관이 회의하여 결정 사항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성종 때 왜구와 여진의 침입이 계속되자 문관만으로는 정확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여 변경(邊境)의 사정에 밝은 종2품 이상의 무관도 참석하게 하여 문관과 군사 방략을 협의하도록 하였는데, 이들을 지변사재상(知邊司宰相)이라 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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