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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사카린 밀수 사건, <회상록 - 묻어둔 이야기> 사카린 밀수 사건, 사카린 밀수 사건은 1966년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이 사카린을 밀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1966년 5월삼성이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2259 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 해 6월 1059 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여만 원을 부과하였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을 짓기 위해 일미쓰이사로부터 정부의 지급보증 아래 상업차관4천여만 달러까지 들여왔다.사카린 밀수를 현장지휘했다고 밝힌 이맹희씨가 1993년 발간한 《회상록 - 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대통령과이병철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 돈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 더보기
이구, 영친왕과 이방자의 둘째 아들 이구, 영친왕과 이방자의 둘째 아들 이구(李玖, 1931년 12월 29일~2005년 7월 16일)는 대한민국의 건축가, 공학자, 교육자, 사업가이다. 구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대한제국 황실 제3대 수장인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의 둘째 아들이다. 일제 강점기의 이왕가의 이왕세자(李王世子)이기도 했으며, 신적강하로 이왕세자직을 상실하고 일본에 체류하였다. 한때 미국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고, 대한민국에 귀국,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출강하기도 했다. 생전에 건축사와 대학강사 등으로 활동했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 종묘제례 봉행위원회 총재로도 활동하였다. 한때 귀국하려 하였으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먼 일족인 이승만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군사 정권 박정희 때에 일시적으로 귀국하였으나 사.. 더보기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사건의 결말과 의문적 미궁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사건의 결말과 의문적 미궁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金炯旭 拉致 暗殺 事件, 혹은 김형욱 실종 사건(金炯旭 失踪 事件))은 1979년 10월 7일 김형욱(金炯旭) 前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의문의 미궁을 남긴 채 납치 암살된 사건이다. 김형욱의 월권 득세와 실각 1961년 박정희(朴正熙, 1917~1979)가 주도한 5·16 군사 정변에 박종규(朴鐘圭, 1930~1985)· 차지철(車智澈, 1934~1979) 등과 함께 가담하여 그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지냈고 1963년 7월, 제4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취임한 뒤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중앙정보부장을 맡은 김형욱(金炯旭, 1925~1979)은 재임 6년 기간 동안 박정희(朴正熙) 대한민.. 더보기
민청학련 사건, '공산주의자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한 학생운동 탄압사건" 민청학련 사건, '공산주의자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한 학생운동 탄압사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事件), 줄여서 민청학련 사건(民靑學聯事件)은 1974년 4월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시국 사건을 말한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의 관련자 180여 명이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2009년 9월 재판부는 민청학련 사건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1972년 10월에 있었던 “유신 체제 발족”과 1973년 8월 8일에 있었던 “김대중 납치사건”은 박정희 정부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반발심을 환기하였으며, 1973년 10월부터 시위 등을 통한 박정희 정부 반대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더보기
1.21사태, 김신조 사건, 김일성의 명령으로 박정희를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치다. 1.21사태, 김신조 사건, 김일성의 명령으로 박정희를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치다. 1·21 사태(-事態)는 김일성의 명령으로 1968년 1월 21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의 군인 31명이 대한민국의 청와대를 기습하여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정희를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당시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은 1968년 1월 13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의 124부대 소속 31명이 조선인민군 정찰국장인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 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1월 17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하여 대한민국 수도권에 잠입하였다. 이들은 청운동의 세검정 고개.. 더보기
차지철, 안전가옥에서 열린 연회중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와 함께 사살되다. 차지철, 안전가옥에서 열린 연회중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와 함께 사살되다. 차지철(車智澈, 1934년 11월 16일 ~ 1979년 10월 26일)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며 정무직공무원이다. 차지철은 1934년 11월 16일에 경기도 이천에서 아버지 차수찬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서울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성장하였고 용산고를 졸업했다. 육군사관학교 12기에 지원하였으나 낙방하고, 1954년 7월에 대한민국 육군 갑종장교 포병간부후보생을 통해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미국에서 육군포병학교를 수료하였다. 1959년에 육군 공수특전단에 배속되었다. 196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조지아 주 포트베닝의 레인저스쿨을 수료하였다. 이듬해인 1961년 제1공수특전단 중대장의 신분으..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대한민국을 병영국가 체제로 만든 1인 장기독재의 길을 연 사건이다. 5·16 군사 쿠테타, 대한민국을 병영국가 체제로 만든 1인 장기독재의 길을 연 사건이다. 5·16 군사 정변(五一六軍事政變)또는 5·16 군사 쿠데타(五一六軍事 coup d’État)는 1961년 5월 15일 저녁부터 1961년 5월 18일 정오 무렵까지 서울, 부산, 대전, 광주, 김포, 부평, 수색, 포천 등에서 쿠데타를 목적으로 일어난 유혈 군사반란을 말한다. 주동자는 서울을 관할하는 제6 관구의 전 사령관이었던 박정희로 밝혀졌으며 그는 미국에 의해 지방으로 좌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군의 참모총장 몰래 십수명의 장성 및 수십명의 핵심 영관급 장교들과의 사전모의를 통하여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고자 하였다. 사전에 참여 병력으로는 김포 공수단 1000여명, 해병 제1여단 1300여명, 6관구 사령부 .. 더보기
동백림 사건, 간첩으로 지명된 교민과 유학생은 서독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송환되다. 동백림 사건, 간첩으로 지명된 교민과 유학생은 서독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송환되다. 동백림 사건(東伯林事件) 또는 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천상병 시인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간첩으로 지명된 교민과 유학생은 서독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당시 독일연방공화국..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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