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람, 단군을 민족의 기원으로 평가하다.
권람, 단군을 민족의 기원으로 평가하다. 권람(權擥, 1416년 ~ 1465년 2월 6일)은 조선 초의 문신, 역사학자, 작가, 문인이다. 자(字)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또는 소한당(所閒堂), 후주당(後週堂)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권근의 손자이다. 남이와 신수근이 그의 사위다.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내다가 한명회와 교유했고, 그를 통해 신숙주 등을 소개받고 수양대군의 측근이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으며, 그 이듬해에는 수양대군과 함께 《역대병요》를 편찬하였다. 1453년(단종 1년) 김종서를 몰아낼 때 앞장섰던 공으로 정난공신 1등관으로 녹훈되고, 승정원우부승지에 특진되었다. 1455년 세조 즉위 후, 수충위사협책정난동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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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응대군, 세종의 막내 아들, 신기전 개발에 큰 도움을 주다.
영응대군, 세종의 막내 아들, 신기전 개발에 큰 도움을 주다. 영응대군 이염(永膺大君 李琰, 1434년 5월 23일/음력 4월 15일 ~ 1467년 2월 2일)은 조선의 왕족이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여덟번째 아들이자 막내아들로, 문종, 세조, 안평대군 등의 친동생이다. 성은 이(李)씨, 이름은 염(琰),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지(明之). 호는 서곡(西谷)이다. 시호는 경효(敬孝)이다. 생애 1441년(세종23) 영흥대군(永興大君)으로 봉해졌으며, 1443년(세종25)에 역양대군(歷陽大君)으로, 1447년(세종29)에 다시 영응대군(永膺大君)으로 개봉되었다. 대군은 원래 여산 송씨와 결혼하였으나 송씨는 병을 이유로 내쫓겼다. 세종의 명으로 송씨가 쫓겨난 뒤 영응대군은 참판 정충경의 딸 해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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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대군, 세종의 넷째 아들, 세조 반정을 지지하다.
임영대군, 세종의 넷째 아들, 세조 반정을 지지하다. 임영대군 이구(臨瀛大君 李璆, 1420년 1월 6일 ~ 1469년 1월 21일)은 조선시대 초기의 왕족, 정치인으로, 조의 제4대 왕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넷째 아들이다. 성은 이(李), 이름은 구(璆),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헌지(獻之)이다. 둘째 형인 수양대군처럼 무술에 능하였으나 궁녀와 대궐의 하녀들과의 성추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계유정난 이후 둘째 형인 수양대군을 지지하여 그를 도왔다. 예종 때의 정승 귀성군 이준의 아버지였고, 영의정 신승선의 장인이며,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는 그의 외손녀였다. 또 단경왕후의 친정아버지 신수근은 그의 외손자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생애 초반 임영대군 이구는 1420년(세종 2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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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 계유정난으로 사사당하다.
안평대군,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 계유정난으로 사사당하다. 안평대군 이용(安平大君 李瑢, 1418년 10월 18일(음력 9월 19일) ~ 1453년 11월 18일(음력 10월 18일))은 조선 전기의 왕족이자 서예가, 서화가, 시인, 작가이다. 이름은 이용(李瑢),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 낭간거사(琅玕居士), 매죽헌(梅竹軒)이며,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이다. 문종 · 세조의 친동생이자 금성대군의 형이었다. 육종영의 한 사람이다. 서예와 시문, 그림, 가야금에 능하였다. 한석봉과 함께 조선 최고의 명필로 불린다. 그는 1431년 숙부 성녕대군(誠寧大君)의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친형 수양대군과 갈등하다가 1453년 김종서, 황보인 등과 함께 정변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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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찬위,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중종 반정과 인조 반정, 이괄의 난, 경종 독살 미수 사건 등에 영향을 미치다.
세조찬위,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중종 반정과 인조 반정, 이괄의 난, 경종 독살 미수 사건 등에 영향을 미치다. 세조찬위(世祖簒位) 또는 세조반정(世祖反正)은 조선의 첫 번째 반정으로 1455년(단종 3)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일이다. 1455년(단종 3) 한명회, 권람, 신숙주 등이 김종서 일파와 안평대군을 제거하고 단종을 폐위시킨 뒤 왕숙인 수양대군(세조)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관점에 따라서 단종 폐위 사건으로 부르기도 한다. 배경 세종과 문종의 사후 어린 단종을 대신하여 관료들과 외척들이 발호하였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왕숙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이 두각을 드러냈으며, 계유정난을 빌미로 반정의 명분을 삼았다. 단종이 즉위하였을 때는 나이 겨우 12세에 불과하여, 부왕이자 선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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