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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

최충헌, 무인정권을 출범하여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누리다.(2) 최충헌, 무인정권을 출범하여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누리다.(2) 반란 진압과 집권 강화 1198년(신종 1) 5월, 자신의 가노인 만적이 연복, 성복, 소삼, 효삼, 미조이 등과 함께 개경 북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며 그들과 반란을 모의하였다. 그러나 거사일에 흥국사에 모인 노비는 수백 명밖에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만적이 거사일을 연기하자, 율학박사 한충유의 종 순정이 주인에게 거사 계획을 누설하고,다시 한충유가 자신에게 밀고하면서 만적 등 100여 명을 붙잡아 강에 던져 죽였다. 이후 최충헌은 한충유에게 합문지후의 벼슬을 내렸고, 순정의 공로도 인정하여 그에게 백금 80냥을 주고 그를 면천시켰다. 1199년 병부상서(兵部尙書)와 이부지사(吏部知事)를.. 더보기
교정도감, 무신정권의 최고 정치기구 교정도감, 무신정권의 최고 정치기구 교정도감(敎定都監)은 최충헌이 설치한 무신정권의 최고 정치 기구로 교정소(敎定所)라고도 한다. 주로 최씨 정권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국정을 총괄하였다. 관직의 기강을 살피고, 인사행정과 그밖에 정치 문제를 다루었다. 1209년(희종 5년) 음력 4월 청교(靑郊)의 역리 3명이 최충헌을 제거하려고 거짓 공첩(公牒)을 만들어 여러 절로 돌려 승려들을 소집하였는데, 귀법사(歸法寺)의 승려가 이를 최충헌에게 고발하였다. 최충헌은 흥국사의 남쪽 영은관(迎恩館)에 임시로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관련자를 색출하였다. 그러나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도 계속 놔두어 최씨 정권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데 이용되었고, 서정(庶政) 감시, 세정, 비위 규찰과 제반 명령 하달 등 국정을 총괄하는 .. 더보기
무신정권, 최씨 집권기의 군사기구와 행정기구 무신정권, 최씨 집권기의 군사기구와 행정기구 최씨정권이라고 흔히 불리며, 최씨 무신정권으로도 불린다. 집권은 60여년간 4대로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가 집권한 때이다. 군사기구 도방 처음 무신정변 이후에 무인들은 저마다 문객과 집안의 종을 무장시켜 사병화하였는데, 이는 경대승의 도방에 이르러 조직화되었다. 최충헌은 경대승을 모방하여 도방의 사병을 6교대로 나누어 교대로 그의 집을 지키게 하고 뒤에 이를 36번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용맹스런 자는 모두 최씨의 사병이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삼별초 최우는 전국의 도적이 급증하자 야별초를 조직하였고, 그 수가 많아지자 좌별초와 우별초로 분리되었고 그 후 원나라에 체포되었다가 달아난 군사와 남은 장정들을 모아서 신의군이 조직됐는데 이 조직 세 곳이 .. 더보기
무신정권, 무신의 난, 정중부, 이의방이 난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시키다. 무신정권, 무신의 난, 정중부, 이의방이 난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시키다. 무신정권(武臣政權)은 의종 24년(1170)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100년간 무신들에 의해 수립된 정부를 말하며, 그 시기를 무인시대라 일컫기도 한다. 문치주의에 입각한 고려의 귀족정치는 무신의 사회적 몰락을 초래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던 무신들에 대한 천대는 의종 때 극에 달했다. 그 때문에 일찍이 최질(崔質)·김훈(金訓) 등의 무신이 주동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킨 일까지 있었다. 생활상으로도 크게 곤란을 받던 무신들의 불만은 오병수박희(五兵手縛戱)를 계기로 폭발하였다. 무신의 난은 1170년 의종 24년에 정중부, 이의방, 이고등에 의하여 일어났다. 이 반란의 성공으로 무신들은 의종을 폐위시키고 명종을.. 더보기
대몽항쟁, 삼별초 항쟁, 고려가 몽골에 맞서 싸우다. 대몽항쟁, 삼별초 항쟁, 고려가 몽골에 맞서 싸우다. 고려의 대몽 항쟁은 고려가 몽골에 맞서 싸운 전쟁을 일컫는다. 좁게는 고려-몽골 전쟁을, 넓게는 삼별초의 항쟁을 비롯한 공민왕 때의 원나라와의 전쟁까지도 포함되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 대몽 항쟁이라 하면 고려-몽골 전쟁과 삼별초의 항쟁만을 가리킨다. 고려와 몽골의 접촉 고려가 몽골과 최초의 접촉을 가지게 된 것은 몽골에게 쫓겨 오는 거란인(요나라 군)을 협공하던 때부터이다. 거란인은 금(金)이 망할 무렵 독립하였다가 다시 몽골군에게 쫓겨 고려의 강동성(江東城)에 내려와 서북 지방에서 약탈을 감행했다. 고려는 몽골과 합세하여, 조충(趙沖)·김취려(金就礪) 등을 보내어 이를 함락시켰다. 몽골은 이후 고려에 대해 매년 공물(貢物)을 요구함으로써 양국 사이는.. 더보기
최우, 항몽전쟁을 선언하고 대장경판 재조를 완성하다. 최우, 항몽전쟁을 선언하고 대장경판 재조를 완성하다. 최우(崔瑀, ? ~ 1249년 12월 10일 (음력 11월 5일))는 고려 중기의 무신(武臣), 권신(權臣), 정치가(政治家)이다. 본관은 우봉(牛峰)이며, 후에 이(怡)로 개명하였다. 최충헌(崔忠獻)의 아들이다. 원종의 국구 김약선은 그의 맏사위이며, 충렬왕에게는 외외증조부가 된다. 정순왕후의 외할아버지이다.1219년부터 1249년까지 고려 왕조의 실권을 맡았다. 1225년(고종 12) 정방(政房)을 부활시켜 관료의 인사권을 탈취한다. 글과 서예에 능하였으며, 몽골의 침략의 조짐이 보이자 항몽 전쟁을 선언하였다. 팔만대장경의 간행에도 기여하였다. 나중에 이름을 이(怡)로 개명하였으나,고려사 반역 열전에 최우 라고 기록한 이후, 집권때까지의 본명인 최.. 더보기
무신정변, 정중부 보현원에서 구테타를 일으키다. 고려사 정중부 무신정변, 정중부 보현원에서 구테타를 일으키다. 무신정변(武臣政變)은 고려시대 의종 24년(1170년) 8월에 상장군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의 휘하장수들이 보현원(普賢院) 에서 일으킨 쿠데타이다. 무신들의 주도로 일어난 정변이었기 때문에 무신의 난(武臣의 亂)이라고 부르고 정변이 일어난 해가 경인년이었기 때문에 경인의 난(庚寅의 亂)이라고도 부르며 정변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중부의 이름을 따서 정중부의 난(鄭仲夫의 亂)이라고 부 르기도 한다. 1170년 이후 계속된 무신정권은 100년 후인 1270년, 마지막 무신집권자인 임유무가 살해당하기까지 100년간 존속되었다. 반란 배경 의종의 유흥으로 문신이 무신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고 내시마저 궁궐을 좌지우지하자, 불만이 쌓인 무신들은 상.. 더보기
삼별초, 몽고에 대항하던 고려의 무장세력 삼별초, 몽고에 대항하던 고려의 무장세력 삼별초(三別抄)는 몽골 침략기에 그에 대항하던 고려의 무장 세력이며, 원래는 하나의 단일한 단체가 아니었다. 뒤에 삼별초의 난을 일으킨다. 다른 반란군과는 달리 원래는 비정규군이었다가 정규군으로 재편된 군대였다. 제주도에서 궤멸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나, 일부 세력이 류큐 왕국(오키나와 지역)으로 향하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유래 원래 삼별초에서의 “별초”(別抄)란 ‘임시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의 일반명사, 일종의 유격대를 말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에는 정규군이 아니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삼별초는 처음에 최우가 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에서 유래한다. 야별초는 1219년 최우가 권력 보호를 위해 조직한 사병이었는데, 뒤에 몽골의 침략에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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