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신왕, 고주몽의 손자, 낙랑 정벌
대무신왕, 고주몽의 손자, 낙랑 정벌 대무신왕(大武神王, 4년~44년)은 고구려의 제3대 왕(재위 : 18년~44년)이다.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이라고도 한다. 왕후는 부여 갈사왕의 손녀인 해씨부인(解氏夫人)이고, 성은 고(高), 휘은 무휼(無恤)이고,추모왕의 손자이자 유리명왕의 셋째 아들이다. 동부여와의 전쟁에서 대소왕을 전사시키고 동부여를 복속시켰으나, 동부여는 다른 곳으로 천도하여 왕위를 이어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통설로는 고주몽의 손자이자 고유리의 아들이다. 즉위 이전 대무신왕은 유리명왕의 셋째 아들로 다물후 송양의 딸 송씨의 소생이다. 유리명왕은 6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첫째인 도절(都切)은 요절하였고, 둘째 해명(解明)은 황룡국(黃龍國)왕이 선물한 활을 부러뜨린 일로 자살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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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다.
유자광,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다. 류자광(柳子光, 1439년 ~ 1512년 6월)은 조선의 초기의 무신, 군인, 교육자, 유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영광(靈光), 자(字)는 우복(于復), 우천(宇天)이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의 토벌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다. 이후 이시애의 난, 남이의 옥 등으로 익대공신에 책록되었고 1506년에는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었다. 서얼(庶孼) 출신으로서 무사가 되었다가 이시애의 난의 진압 때 세운 공로로 세조의 총애를 얻어 1468년(세조 13년) 병조정랑으로 온양별시문과(溫陽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병조판서, 판한성부사, 황해도와 경상도의 관찰사 등을 지냈다. 그 뒤 의정부 좌찬성 등을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 행의정부좌찬성, 겸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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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돈,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 유자광에게 조의제문 실린 사실을 알려주다.
이극돈,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 유자광에게 조의제문 실린 사실을 알려주다. 이극돈(李克墩, 1435년 ∼ 1503년 2월 27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정치인, 학자, 외교관이다.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의 아들이자 영의정을 지낸 이극배의 동생이다.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로 유자광에 의해 지목되어 사림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 멸망 이후 복권 여론이 나타났다.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4등관에 녹선되고, 광원군(廣原君)에 봉군되었다. 자(字)는 사고(士高)이고 호는 사봉(四峯)이며 시호는 익평(翼平),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그의 부친 이인손과 형 이극배, 동생이극균 3부자가 정승을 지내고 나머지 형제들도 판서를 지냄으로써 형제가 모두 작위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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