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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다. 병산서원,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서애 류성룡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는 서원이다. 사적 제260호로 고려 시대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던,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을 1572년 선조5년 서애 류성룡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개요 고려 시대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을 풍산현에서 1572년 선조 5년 서애 류성룡이 안동으로 옮겨오면 서부터 병산 서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607년 서애가 타계하자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13년 광해군 5년에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1614년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 광해군 12.. 더보기
YH사건, 1970년대의 여성 근로자 쟁의 사건 YH사건, 1970년대의 여성 근로자 쟁의 사건 YH 사건 또는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은 가발수출업체인 와이에이치 무역 여성 근로자들이 회사폐업조치에 항의하여 야 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1979년 8월 9일부터 8월 11일 사이에 벌어졌으며 경찰이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여공 1명이 추락사하였다. 이 사건은 후에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과 부마민중항쟁, 10·26 사태로 이어지는 박정희 정권 종말의 도화선이 되었다. 발단 1970년대 초 수출순위 15위로 대한민국 최대의 가발수출업체였던 YH무역은 70년대 중반부터 수출둔화와 업주의 자금유용, 무 리한 기업확장 등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든데다 1975년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자 1979년 3월 폐업을 공고했다.. 더보기
부마민중항쟁,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긴 계기가 되다. 부마민중항쟁,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긴 계기가 되다. 부마민중항쟁(釜馬民衆抗爭)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 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한 항쟁을 말한다. 10월 16일에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유신철폐"의 구호와 함께 민주화 시위를 시작했다. 다음날인 1일부터 시민 계층으로 확산된 것을 시작으로 해서, 18일과 19일에는 마산 지역으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됐다. 당시 박정희 유신 정권은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66명을 군사 재판에 회부했으며, 10월 20일 정오 마 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군을 출동시킨 후 민간인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배경 1978년 12월에 실시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더보기
독도 분쟁, 누가 먼저 발견하였고 실효 지배를 하였는가?(1) 독도 분쟁, 누가 먼저 발견하였고 실효 지배를 하였는가? 독도 분쟁이란, 독도에 대해 대한민국과 일본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여 생긴 영토 분쟁을 말한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동해에 위치하고 있고,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를 중심으로 주변의 암초 등을 포함한 총면적은 0.188 km2이며, 현재 대한민국의 실효 지배 하에 있다. 독도 분쟁은 19세기 이전, 독도에 대한 지배 및 관할을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한 역사 논쟁과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 측은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적 문헌을 인용하거나 고지도에 기록된 우산도 등을 근거로 하여,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이며 19세기 이전부터 한국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측은 우산도가 울릉도, 관음도, 죽도 또는 존재하지 않는 섬이라.. 더보기
4.19 혁명,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 4.19 혁명,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 4·19 혁명(四一九革命)은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승만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이기붕을 부통 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 명이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시위는 시위대 중의 한 사람으로서 3월 18일경에 실종되었다가 시신에 최루탄이 박힌 채 경상남도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이 4월 11일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통해 공개되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4월 19일 경찰은 경무대에 몰려든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을 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더보기
유신헌법, 긴급조치권 부여, 국회 해산권, 연임제한 철폐 유신헌법, 긴급조치권 부여, 국회 해산권, 연임제한 철폐 대한민국 헌법 제8호는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가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의 비상조치 아래 위헌적 절 차에 의한 국민투표로 1972년 12월 27일에 통과시킨 헌법으로, 유신 헌법(維新憲法)이라고도 한다.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한 이래로 7번째로 개정한 헌법이다.) 이 헌법 체제 하에서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횟수의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었다. 또한, 대통령 선출 방식이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로 바뀌었다. 유신 체제는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모두 쥔 대통령이 종신(終身) 집권할 수 있도록 설계된 대통령제였다. 역사 1.. 더보기
인혁당 사건,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인물들에게 사형이 집행되다. 인혁당 사건,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인물들에게 사형이 집행되다. 인민혁명당 사건(人民革命黨 事件, 영어: People's Revolutionary Party Incident) 또는 인혁당 사건(人革黨 事件)은 중앙정보 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도예종 등의 인물들이 기소되어 대법원의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사건 이다. 한국방송 《미디어 비평》의 '오늘의 역사'에서는 인혁당 사건이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밝혀졌음을 보도했다. 인권탄압의 사례 1964년의 제1차 사건에서는 반공법위반으로 실형이 선고 되었고 , 1974년의 제2차 사건에서는 국가보안법·대통령 긴급조치 4호 위반 등.. 더보기
10.26 사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하다. 10.26 사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하다. 10·26 사건(十二六事件) 또는 박정희 암살사건(朴正煕暗殺事件)은 1979년 10월 26일에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 가 박선호, 박흥주 등과 함께 대통령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살해한 사건이다. 십이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궁정동 안가(염동진의 아지트가 있 던 자리)에서 경호실장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함께 연회를 가졌다. 연회 중에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에 가슴과 머리를 맞았고 곧 수도육군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송 중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박정희의 나이는 만 62세였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민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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